게오르크 폰 퀴흘러
게오르그 카를 프리드리히 빌헤름 폰 퀴흘러(Georg Karl Friedrich Wilhelm von Küchler, 1881년 5월 30일 ~ 1968년 5월 25일)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육군 원수였다. 전쟁이 끝나고, 뉘른베르크 군사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20년형을 부여받았으나, 지병과 고령을 이유로 8년만 복역하고 1953년 출소하였다.
게오르그 카를 프리드리히 빌헤름 폰 퀴흘러 Georg Karl Friedrich Wilhelm von Küchler | |
복무 | 1900년 1월[1] – 194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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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 독일제국 (1910 ~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1933년까지) 나치 독일 |
최종계급 | 야전원수(Generalfeldmarschall) |
주요 참전 | 제 2차 세계대전: 네덜란드 전투, 프랑스 전투, 레닌그라드 전투 |
서훈 | |
서명 |
참고 문헌
편집전임 신설 |
제1대 제1보병사단 사단장 1934년 10월 1일 ~ 1935년 4월 1일 |
후임 중장 발터 슈로트 |
전임 신설 |
제1대 제3군 사령관 1939년 9월 1일 ~ 1939년 11월 5일 |
후임 폐지 |
전임 신설 |
제1대 제18군 사령관 1939년 11월 5일 ~ 1942년 1월 16일 |
후임 상급대장 게오르크 린데만 |
전임 빌헬름 리터 폰 레프 |
제3대 북부 집단군 최고지휘관 1942년 1월 17일 ~ 1944년 1월 9일 |
후임 야전원수 발터 모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