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명군
조선 성종의 서남
경명군 이침(景明君 李忱, 1489년 10월 6일(음력 8월 18일) ~ 1526년 7월 4일(음력 5월 25일))은 조선의 왕자로, 성종의 11남이자 서7남이다. 어머니는 숙의 홍씨이다.
경명군
景明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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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의 왕자 | |
이름 | |
휘 | 이침(李忱) · 충복(忠福 · 아명) |
시호 | 정민(貞敏)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89년 10월 6일(양력) |
사망일 | 1526년 7월 4일(양력) | (36세)
부친 | 성종 |
모친 | 숙의 홍씨 |
배우자 | 강양군부인 파평 윤씨 |
자녀 | 2남 2녀 |
능묘 | 경명군 묘(景明君墓)
경기도 의정부시 산곡동 산25-1 |
생애
편집1489년(성종 20년) 8월 18일, 성종과 숙의 홍씨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났다.[1] 이름은 침(忱)이며, 아명은 충복(忠福)이다.
1519년(중종 14년), 박수문 등이 왕자들의 행실을 문제삼으며 왕에게 타이를것을 청하였는데, 경명군은 외지부의 사람을 불러모아 송사(訟事)를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에도 경명군은 자주 송사를 일으켜, 부정적인 방법으로 남의 노비를 빼앗아 헌부에서 경명군을 체직할 것을 청했지만 중종은 이를 듣지 않았다.[2]
같은 해, 헌부에서 표문을 배송할 때 경명군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달려서 지나갔는데, 이를 두고 헌부에서 경명군이 조정을 능멸했다며 국문할 것을 청하니 왕이 종부시로 하여금 추국하게 하였다.
1521년(중종 16년), 이복 동생인 영산군(寧山君)과 함께 안처겸의 옥사에 연루되자, 대간들이 앞다투어 처벌을 주청하였지만 중종의 비호로 무사하였다.[3] 이후 사옹원 제조(司饔院提調)가 되었으나 폐해를 끼쳐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4]
1526년(중종 21년) 5월 25일 졸하였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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