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목왕

고려의 제29대 임금 (1337–1348)
(고려 충목왕에서 넘어옴)

충목왕(忠穆王, 1337년 5월 15일(음력 4월 15일) ~ 1348년 12월 25일(음력 12월 5일)은 고려 제29대 국왕(재위: 1344년~1348년)이다. 휘는 흔(昕), 몽골 이름은 파드마도르지(몽골어: Batma Dorji[1], 한자: 八思麻朶兒只 '팔사마타아지'), 원에서 내린 시호충목왕(忠穆王)이며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현효대왕(顯孝大王)이다. 충혜왕덕녕공주(德寧公主) 사이에서 태어났다.

충목왕
忠穆王
제29대 고려 국왕
재위 1344년 2월 ~ 1348년 12월 5일 (음력)
전임 충혜왕
후임 충정왕
이름
 고려 이름  왕흔(王昕)
 몽골 이름  파드마도르지(Batma Dorji, 八思麻朶兒只)
시호 고려: 현효대왕(顯孝大王)
원: 충목왕(忠穆王)
능호 명릉(明陵)
신상정보
출생일 1337년 4월 15일(1337-04-15) (음력)
사망일 1348년 12월 5일(1348-12-05)(11세) (음력)
부친 충혜왕
모친 덕녕공주
배우자 미혼
자녀 없음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하였으나 후사없이 요절한다. 1344년부터 1348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그의 모후인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을 하였다.

생애

편집

충혜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나라덕녕공주였다. 1344년(충혜왕 5) 충혜왕이 죽자, 8세에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으므로 어머니인 덕녕공주가 대신 정사를 맡아보며 전조(前朝)의 폐정을 시정하였다. 권세가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며, 녹과전(祿科田)의 폐단을 시정하였다. 기근이 들었을 때 진제도감(賑濟都監)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또한, 충선왕의 명으로 민지(閔漬)가 찬진(撰進)한 《편년강목》을 증수시키고, 충렬왕·충선왕·충숙왕 등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1348년 10월 병이 들었고 병세가 악화되자 그해 12월에 김영돈(金永旽)의 집으로 거쳐를 옮겨 그곳에서 승하했다.

흑사병 창궐의 시작

편집

1348년경에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창궐하였다.[2]

가족 관계

편집
   고려 제29대 국왕       충목 현효대왕   
忠穆 顯孝大王
출생 사망
1337년 5월 15일 (음력 4월 15일) 1348년 12월 25일 (음력 12월 5일) (11세)
  고려 개경 김영돈의 집

부모

편집
생몰년 부모 비고
충혜왕 忠惠王 1315년 - 1344년 충숙왕 忠肅王
공원왕후 홍씨 恭元王后 洪氏
   제28대 국왕   
덕녕공주 德寧公主
   정순숙의공주 貞順淑儀公主   
  ?   - 1375년 초스발 焦八


충목왕이 등장하는 작품

편집

저서

편집
  • 《편년강목》증수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范永聰 (2009). 《事大與保國 ── 元明之際的中韓關係》 (중국어 (홍콩)). 香港教育圖書公司. 58쪽. ISBN 9789882003019. 
  2.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2장 고려시대 농업 기술 및 농민 생활, 국가 주도 권농 정책 > 1. 고려시대 기후와 재해”. 《우리역사넷》. 한국문화사. 국사편찬위원회. 2024년 4월 8일에 확인함.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고려 왕실과 원나라"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