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월
행적
편집공손찬이 기주로 진출하여 한복(韓馥)을 공격해 격파했다. 이로 인해 한복이 힘을 잃자 여러 세력들이 기주를 공격하였고, 당시 한복의 객장이었던 원소(袁紹)는 영내의 위협세력을 모두 격파해 제거하고 한복을 협박해 기주를 차지했다.[1] 공손찬은 원소와 사이가 나쁘던 원술(袁術)과 연합했고 공손월에게 1천명의 기병을 주어 원술에게 파견했다.[2]
원술은 손견(孫堅)과 공손월을 파견해 원소에게 탈취당한 양성을 공격했으나, 양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공손월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공손찬은 공손월의 사망소식을 전해듣고 분노하여 공손월이 죽게 된 것은 모두 원소의 탓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공손찬의 남진이 시작되었다.[3]
공손월의 친족관계
편집관련 인물
편집각주
편집- ↑ 진수(3세기),《삼국지》〈권6 원소전(袁紹傳)〉 - “後馥軍安平,為公孫瓚所敗。瓚遂引兵入冀州,以討卓為名,內欲襲馥。馥懷不自安。英雄記曰:逢紀說紹曰:「將軍舉大事而仰人資給,不據一州,無以自全。」紹答云:「冀州兵強,吾士飢乏,設不能辦,無所容立。」紀曰:「可與公孫瓚相聞,導使來南,擊取冀州。公孫必至而馥懼矣,因使說利害,為陳禍福,馥必遜讓。於此之際,可據其位。」紹從其言而瓚果來。”
- ↑ 위와 같음, 권8 위서 제8 2공손도4장전 - 瓚懼術聞而怨之,亦遣其從弟越將千騎詣術以自結,
- ↑ 위와 같음, 권8 위서 제8 2공손도4장전 - 是時,術遣孫堅屯陽城拒卓,紹使周昂奪其處。術遣越與堅攻昂,不勝,越為流矢所中死。瓚怒曰:「余弟死,禍起於紹。」遂出軍屯磐河,將以報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