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회
공손회(公孫恢, ? ~ 36년)는 중국 후한 초기 독립정권 성가의 종실이자 관료로, 황제 공손술의 아우다.
24년, 한 경시제가 보낸 정식 익주자사 장충과 주공후 이보(李寶)가 1만 군사를 이끌고 부임하러 오자, 한나라 관직을 자칭하고 있던 형의 명령으로 이들을 공격해 격퇴했다. 25년, 형이 성가를 세우고 황제가 되면서 대사공이 되었다.[1]
35년, 형주에서 치고올라오는 후한의 장군 잠팽과 장궁을 연잠·여유 등과 함께 광한현·자중현에서 요격했으나, 잠팽이 성군의 후방을 뒤흔들어 성군이 흔들리는 틈을 탄 장궁의 공격을 받아 참패했다.[2][3]
36년 음력 9월, 후한의 장군 장궁과 싸웠으나 면죽현과 부현을 잇따라 함락당하고 자신도 참수되었다.[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