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김씨
공주 김씨(公州金氏)는 충청남도 공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관향인데,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모두 공주 김씨가 중국(당나라)에서부터 귀화한 성(唐投化姓)이라고 나온다.[1]
나라 |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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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충청남도 공주시 |
시조 | 김학기(金學起) |
집성촌 | 평안남도 대동군 평안북도 정주군 전라북도 군산시 전라남도 여수시 |
주요 인물 | 김학익, 김태좌, 김경의, 김성경, 김천경, 김덕량, 김언충, 김덕택, 김변적, 김소월, 김정섭 |
인구(2015년) | 7,589명 |
시조
편집시조 김학기(金學起: 1414년~1488년)는 1460년(세조 6년) 별시 문과에 합격해[2] 사헌부 장령(掌令)[3]·집의(執義)[4]·사옹원정[5]·대제학 등을 지냈다.[6] 1478년 노사신(盧思愼)·강희맹(姜希孟)·서거정(徐居正) 등과 함께 《동문선(東文選)》 편찬에 참여했다.[6][7] 글씨로는 〈양평공 윤사흔 신도비명〉이 전한다.
가계
편집아버지는 직장(直長: 종7품) 김만의(金萬義)이고, 어머니는 한씨(韓氏)다. 할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 정5품) 김득귀(金得貴)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도정(都正: 정3품) 김해충(金海冲)이고, 고조할아버지는 김구(金龜)다.[6]
맏아들 김길복(金吉福)은 진사(進士)이고, 손자 김우경(金禹卿)은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이며[8], 증손자 김덕량(金德良)은 1546년(명종 1년) 문과 합격 후[9] 감찰(監察) 및 흡곡(歙谷)·덕천(德川) 현령(縣令)을 지냈다.[6]
둘째아들은 김길보(金吉輔)이고, 손자 김자흥(金自興)은 1520년(중종 15년) 별과(別科) 때 솔개를 쏘아 명중하여 특별히 급제를 하사받았고 첨사(僉使)를 지냈다.[6]
본관
편집각주
편집- ↑ 《세종실록》 권149 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唐投化姓一, 金。”;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7, 충청도 공주목 성씨 본주(本州), “金。唐投化。”
- ↑ 《국조문과방목》 권3, 22면
- ↑ 《성종실록》 권133, 성종 12년(1481년) 9월 10일(신사) 4번째 기사
- ↑ 《성종실록》 권154, 성종 14년(1483년) 5월 15일(병오) 2번째 기사
- ↑ 그가 이 관직으로 임명받은 해는 1483~85년으로 보임. 《성종실록》 권179, 성종 16년(1485년) 5월 13일(임술) 6번째 기사에서 그가 재직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임.
- ↑ 가 나 다 라 마 이시항, 《화은집》 권8, 藝文舘直提學金公墓碣銘
- ↑ 《동문선》 찬집관, “朝散大夫行承文院校理臣金學起”
- ↑ 《가정 25년 병오 10월 초8일 문무잡과 식년방(嘉靖二十五年丙午十月初八日文武雜科式年榜)》
- ↑ 《국조문과방목》 권7, 113면; 《가정 25년 병오 10월 초8일 문무잡과 식년방(嘉靖二十五年丙午十月初八日文武雜科式年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