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관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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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관천대(昌慶宮 觀天臺)는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로,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천문기구인 소간의(小簡儀)를 놓았던 돌로 만든 대(臺)이다.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보물 제851호로 지정되었다.[1]

창경궁 관천대
(昌慶宮 觀天臺)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구)제851호
(1985년 8월 9일 지정)
수량1기
시대조선시대
소유국유(문화재청)
관리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이런 관천대로는 이 유물과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 관상감(觀象監) 자리인 옛 휘문중고등학교 자리인 지금 현대건설주식회사 건물 대지 안에 있는 관상감 관천대 두 개가 있을 뿐이다. 창경궁의 관천대는 조선 후기 숙종 때 평지에 만들어진 것이며, 개성의 첨성대가 평지에 위치하는 것과 입지가 유사하다. 중심 전각들을 축으로 살펴보면 그 반대편에 관측을 하던 언덕이 마주하고 있다. 그 언덕에서는 창경궁 전체를 내려다 볼수도 있으며, 창경궁의 동궁이 그 언덕 아래에 궁의 제일 안쪽으로 위치한다. 이것은 숙종 이전에는 관측 업무가 창경궁에서 상당히 큰 비중으로 다루어 졌음을 잘 말해준다.

보물 제1740호인 관상감 관천대는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관상감(觀象監)에 관천대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장영실세종이 얘기를 나누기도 한 곳이다.

역사 및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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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관지(書雲觀志)》에 관상감과 관천대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본감(本監)이 하나는 경복궁 영추문 안에 있고, 하나는 북부 광화방에 있었는데 거기에 관천대가 있었다. 중간에 전쟁을 만나 창경궁의 금호문 밖과 경희궁의 개양문 밖에 고쳐 세웠는데 다 관천대가 있었다. 흔히 첨성대라 부른다. 숙종 무진년(1688)에 영감사 남구만(南九萬)이 몸소 터를 살펴 관가를 처음 세우니 이것이 금호문 밖의 본감이다. 하늘을 살펴 숙직하는 제도가 한 때 성하게 갖추어졌고 ... 대(臺)의 설치 규모는 대략 같고, 청사 동서쪽의 집은 작다. 이 때에 김창집(金昌集)이 본감을 감독했다. 세월이 오래됨에 무너져 황폐하니 이에 임금께서 신미년에 비로소 건물을 세워 측후하는 곳을 갖추었다. 무인년에 또 문과 곁채를 세우고 관천대를 호조에서 수리하였다. 동쪽과 서쪽방과 청사가 7칸 반이고 이 청이 3칸이며 대문 좌우의 행랑이 각각 1칸이고, 해시계와 측우대가 있다. 관천대는 청사 남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돌난간을 둘러 평방석(平方石)을 올려놓았는데, 천체를 관측할 때에는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하였으므로, 소간의대라고도 한다.

창경궁 관천대는 화강암 석대 위에 돌난간이 둘려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대의 한 가운데에는 다시 돌대가 놓여 있어, 그 위에 소간의(小簡儀)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현재 소간의는 없다.

소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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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천대 위에 설치한 소간의는 천체들의 자리를 관측하는 천문관측기구인 간의(簡儀)를 보다 작고 편리하게 만든 것으로, 적도환·백각환·사유환의 3개의 환으로 이루어졌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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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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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보 제10111호 1985년 8월 9일. 5-6쪽. 6쪽. 문화공보부고시제645호. 국보및보물지정. 문화공보부장관. 2016년 5월 20일 확인함.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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