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인
조선시대의 유학자
권응인(權應仁)는 경상북도 성주군 출신으로 호는 송계(松溪)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16세기 초반에서 16세기 말 임진왜란 발발 직전까지 활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시와 문에 능하였으며 송계만록(松溪漫錄)을 저술하였다. 송계만록은 제2권만 전한다.[1][2]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서 당시의 사회제도에서는 서제로 알려져있다. 또한 그가 저술한 송계만록은 상권 및 하권으로 시 및 그림 그리고 일화를 서술하고있어 문화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한권은 임진왜란때 소실된것으로 알려져있다.
뻐꾸기 은사
편집권응인의 송계만록을 비롯해서 이양연의 시 '미장조'나 조석주의 백야기문(白野記聞)에는 세속을 떠나 은둔하는 선비가 정작 세속에 연연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뻐꾸기 은사'를 언급하고 있다.[3] 또한 송계만록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숨바꼭질 놀이에서 뻐꾸기 소리를 장난으로 사용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편 뻐꾹새는 탁란을 한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국립중앙도서관-『松溪漫錄』의 異本과 그 자료적 가치[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국립중앙도선관-송계만록 권2[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백야기문(白野記聞)-權炭翁, 好戱言, 嘗曰: '今之隱士, 乃法局隱士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