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대한민국의 시인 (1914–1993)
김광균(金光均, 1914년 1월 19일~1993년 11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1973년 은퇴)이었으며, 1926년에 등단한 시문학에서 약47년여만에 은퇴한 이후에는 기업가 겸 실업가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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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 |
출생 | 1914년 1월 19일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지파리 |
사망 | 1993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79세)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기업가 |
학력 | 경기개성송도고등상업학교 졸업(1932년) |
경력 | KS물산 회장 |
본관 | 웅천 |
종교 | 개신교(예장통합)→천주교(세례명: 나자렛의 요셉) |
필명 | 호(號)는 우사(雨社)·우두(雨杜) |
활동기간 | 1926년~1973년 |
장르 | 시, 수필, 평론, 시론 |
수상 | 1990년 제2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1991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
배우자 | 김선희 |
자녀 | 4남 2녀(그 가운데 장녀 김은영) |
형제 | 3남 1녀 중 장남(둘째) (누나 1명, 남동생 2명) |
친지 | 전성우(맏사위) 전인건(외손) 전형필(사돈) 박종화(사돈) |
주요 작품 | |
시집 《와사등》, 《기항지》, 《황혼가》 |
본관은 웅천(熊川)이고, 호(號)는 우사(雨社)·우두(雨杜)이며, 일제 시대 경기 개성 출생이다.
13세 시절이던 1926년에 시인으로 첫 등단한 그는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모더니즘 시 운동에 자극을 받아 “시는 하나의 그림(회화)이다”라는 시론을 전개하면서 주지적·시각적인 시를 계속 발표하여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후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시집에 《와사등》, 《기항지》, 《황혼가》 등이 있다.
1926년 시인으로 첫 입문하였으며, 아직 광복 이전이던 1937년경부터 경성부에 이주한 그는, 1969년 실업계에 투신한 이후 1973년 시문학가 분야에서는 완전히 전격 은퇴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8·15 을유해방)이 도래한 후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중에 북한인민공산군한테 납북된 첫째 남동생이 운영하던 건설상회를 대신 운영하며, 1969년에 중견 기업(KS물산)으로 키워내는 등 후대엔 시인(1973년 은퇴)의 길이 아닌, 기업가로 활동했다.
1973년 시인(시문학)에서 은퇴한지도 17년이 지난 1990년, 〈제2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키도 했다.
참고 문헌
편집- 『한국현대시인연구』(김재홍, 일지사, 1986)
- 『한국모너니즘시연구』(문덕수, 시문학사, 1981)
- 『한국현대시인연구』(정태용, 어문각,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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