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조선의 문신)

조선 후기의 문신

김동연(金東淵, 1724년~?)은 조선 시대 후기의 문신(문관)이다. 그는 홍문관 사관, 승정원 사관,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등의 각 관직을 두루 지냈으며, (字)는 백우(伯愚)이고, 본관언양(彦陽)이다.

김동연
金東淵
조선사헌부 장령
재임 1774년~1775년
임금 영조 이금[1]
대리청정 세손 이산(1771~1776)
이름
백우(伯愚)
신상정보
출생일 1724년
거주지 조선 한성부
사망일 몰년 미상
국적 조선
경력 1768년 정시문과 병과 급제 이후 홍문관 사관(1768년~1770년)과 승정원 사관(1770년~1771년)과 사간원 정언(1771년~1772년)과 사간원 사간(1775년)과 사헌부 집의(1775년)와 사간원 헌납(1775년~1778년)을 두루 지냄.
당파 노론 시파 세력
본관 언양(彦陽)
부모 양부(養父): 김양묵(金陽默)[2]
생부(生父): 김여석(金汝錫)[3]
형제자매 형(兄): 김준연(金俊淵)
친인척 종백부(從伯父): 김양문(金陽文)[4]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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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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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여석(金汝錫)의 슬하 2남 중 막내로 출생하였고 다섯 터울의 친형 김준연(金俊淵)이 있었으며 1737년 당시 14세 때 5촌 종숙부 김양묵(金陽默)한테 양자(養子)로 출계(出系)되었다.

장성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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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草野)에서 글 읽는 유림 유생(儒林 儒生)으로 지내다가 1768년(영조 4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사관(弘文館 史官)을 지냈다. 1772년 벽파(僻派)를 공격하다가 관직에서 삭탈 및 충군(充軍)되었으며, 1774년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으로 재차 기용되었다. 1775년 사간원 헌납(司諫院 獻納)으로 화폐 주조 관련 정책의 폐단을 논하고, 1776년 노론 예하 시파(時派)의 선봉장이 되어 노론 예하 벽파의 탄핵에 앞장섰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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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 왕세손(이산)이 대리청정 등에 참여.
  2. 본디 5촌 종숙부.
  3. 생부(김여석)는 양부(김양묵)의 사촌 종형.
  4. 생부(김여석)와 양부(5촌 종숙부 김양묵)의 친가 큰댁 사촌 종형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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