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물
조선의 문신(1548~1592)
김여물(金汝岉, 1548년~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천이다.
김여물 金汝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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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48년 |
사망 | 1592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본관 | 순천 |
학력 | 문과급제 |
직업 | 정치인 |
부모 | 부 김훈(金壎), 모 신천 강씨(信川康氏) |
종교 | 유교 |
생애
편집1577년(선조 10)에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높은 벼슬에는 등용되지 못하였다. 충주도사(忠州都事), 담양부사를 거쳐, 1591년에는 의주목사로 있었으나, 서인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임진왜란 때 충주의 달천(㺚川)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신립을 따라 탄금대(彈琴臺) 아래에서 용전분투했으나 왜적을 당하지 못해 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죽은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으며, 1788년(정조 12) 장의(壯毅)라는 시호를 받았다.
가족 관계
편집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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