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 (1897년)
한국의 극작가
김우진(金祐鎭, 1897년 9월 19일~1926년 8월 4일)은 일제강점기 연극인· 연극 이론가이다. 전남 장성 출생. 호는 초성(焦星)· 수산(水山). 장성 군수와 목포에서 무안 감리를 지낸 부농 초정(草亭) 김성규(金星圭)와 순천박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래로 남동생이 김철진과 김익진이다.
김우진 金祐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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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 |
출생 | 1897년 9월 19일 조선 전라도 장성군 |
사망 | 1926년 8월 4일 대한해협 (윤심덕과 투신하여 정사(情死)함) | (28세)
민족 | 한민족 |
언어 | 한국어 · 일본어 · 영어 |
직업 | 시인 · 극작가 · 연극이론가 |
학력 | 구마모토농업학교 와세다대학 |
부모 | 父 김성규(金星圭) |
배우자 | 정점효(鄭點孝) |
자녀 | 김방한(金芳漢) |
주요 작품 | |
《정오(正午)》, 《이영녀(李永女)》, 《산돼지》 |
목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구마모토 농업학교를 거쳐, 1924년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0년대 한국 신극 운동의 주도자였으며 '극예술 협회', '동우회 순회연극단'을 이끌었다. 그의 희곡 작품은 1910년대 극의 주류였던 가정극의 문제 의식을 깊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 담겨 있는 개혁 의지를 사회 현실적인 차원에서 확대하려는 두 갈래 양상을 보여주었다.
김우진은 한국 최초로 근대극다운 희곡을 남겼으며, 서구의 표현주의 문예이론을 수용하는 한편, 이를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버나드 쇼의 사회 문제극과 스트린드베리의 표현주의 극의 영향을 받았다. 해박한 식견과 선구적 비평안을 가지고 당대 연극계와 문단에 탁월한 이론을 제시한 평론가이며, 최초로 신극운동을 일으킨 연극운동가로 평가된다.[1]
1926년 8월 3일 현해탄에서 '사의 찬미'를 부른 애인 윤심덕과 함께 투신 정사(情死) 했다.
주요 작품
편집- 〈정오(正午)〉
- 〈이영녀(李永女)〉
- 〈산돼지 (희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