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배
김욱배(金旭培, 1913년 7월 24일~1993년 2월 10일)는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 말기의 광복군 관련 독립운동가인데, 1945년 8·15 을유해방·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무자광복 이후 1977년 3월 1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1990년 3월 1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기각기로 받았다.
김욱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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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본명 | 김동오(金桐梧) → 김욱배(金旭培) |
출생 | 1913년 7월 24일 일제 강점기 조선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 삼산리 658번지 |
사망 | 1993년 2월 10일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 (79세)
거주지 | 일제 강점기 조선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 삼산리 658번지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공주 |
직업 | 항일 독립 운동가 |
학력 |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 장쑤 성 상하이 후장 대학교 정치경제학과 3학년 2학기 중퇴(1937년 10월) |
부모 | 김장호(부), 기계 유씨 부인(모) |
형제 | 3남 6녀 중 막내(셋째아들) |
친척 | 김낙구(할아버지) |
활동 정보 | |
관련 활동 | 독립운동 |
활동 기간 | 1934년~1946년 |
주요 활동 | 광복군 |
경력 | 광복군 중사 전역(1945년 8월 22일) |
상훈 | 대한민국 건국포장(1977. 03. 01.)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1990. 03. 01.) |
웹사이트 | 김욱배 : 독립유공자 공훈록 - 국가보훈처 |
생애
편집충청남도 논산(論山)의 중농 집안에서 김동오(金桐梧)라는 이름으로 출생한 그는, 1918년(여섯살때)에 김욱배(金旭培)라는 이름으로 개명(改名)되었다. 1934년 6월에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 상학과 2학년 1학기를 중퇴하고 난 후, 중화민국의 장쑤 성의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이듬해(1935년)의 3월에는 상하이(上海)의 후장 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신규 입학하였으나, 1937년 10월에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 장쑤 성 상하이 후장 대학교 정치경제학과 3학년 2학기를 중퇴한 이후, 상하이(上海)의 중일 전쟁 관련 전쟁터에서, 리야카 관련 민간 노무 등에 어언 4년간 종사하다가, 당시 광복군 공작원 김천성(金天成)·이덕산(李德山)과 본격 접선되면서부터, 1941년 3월에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원으로 입대하였다. 광복군 군내 OSS훈련 관련 정보반을 거쳐, 적진 파괴 작전 훈련반을 수료하였으며, 광복군 국내정진군 충청도 담당반의 제1조에 소속되어 국내 진입을 기다리던 중 1945년 8월 15일 을유광복(8·15 해방)을 맞이하였으며, 이듬해 1946년 6월 초순에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본토 대륙과 만저우를 모두 떠나 한반도의 삼팔선을 넘어 미군정 조선 시대의 수도였던 서울을 건너 월남하여, 결국 무사히 충청남도 논산군 고향으로 귀거하였다.
서훈
편집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1977년 3월 1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수여하였고, 13년 후 1990년 3월 1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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