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희
김춘희(金春熙, 1855년 9월 14일 ~ 1926년 8월 19일)는 구한말의 고위관료이다. 일본제국의 귀족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김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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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귀족 남작 | |
후임 | 김교신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55년 9월 14일 |
사망일 | 1926년 8월 19일 | (70세)
경력 | 홍문관 부수찬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 황해도 관찰사 궁내부 특진관 국조보감 편집관 승녕부 시종장 조선귀족 남작 중추원 참의 |
가문 | 경주 김씨 |
친인척 | 삼촌: 김홍집 종증손자: 김우경 |
학력
편집- 과거 급제
생애
편집본관은 경주로 신라 황족의 후손. 본적지는 한성부 효자동이다. 본래 김승집의 아들이나 김항집에게 입적되었다. 개화파 문신인 김홍집에게는 조카가 된다.
1883년 과거에 병과(丙科) 6위로 급제한 뒤 예문관과 사간원에서 관직을 시작,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홍문관 부수찬과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1889년 이조참의를 맡았다. 1893년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1894년 갑오경장으로 숙부인 김홍집이 친일 내각을 조직해 집권했을 때는 황해도 관찰사로 발령 받았다.
이후 학부 협판과 궁내부 특진관, 국조보감 편집관 등을 지냈다. 1910년 승녕부 시종장으로서 일본에 가서 당시 황태자이던 순종을 만나고 돌아오기도 했다.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고 덕수궁 찬시로 근무했으며, 192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개편 때는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1915년에 다이쇼대례기념장, 1924년에 훈3등 서보장을 받았고, 사망 직후 정4위에 서위되었다.
사후
편집김 남작의 작위는 장남 김교신을 거쳐 손자인 김정록이 습작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과 2008년에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들어 있다.
가족 관계
편집그외 것들
편집- 인덕이 높아 순종 황제가 김 남작을 높게 보았다.
- 하녀, 시종을 보유했는데 하녀 중 임금을 욕하는 종년이 있어 교형으로 처형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효수를 한성에 걸어놓으라 지시하였으며 백성들에게 보게 해 입을 함부로 놀리게 하지 못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