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 (야구인)
대한민국의 야구인 (1962–2009)
김훈기(1962년 7월 25일 ~ 2009년)는 대한민국의 전직 야구 선수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투수이자, 전성기는 1988년이었다.
| ||||
기본 정보 | ||||
---|---|---|---|---|
국적 | 대한민국 | |||
생년월일 | 1962년 7월 25일 | |||
출신지 | 대한민국 | |||
사망일 | 2009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수비 위치 | 투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86년 | |||
드래프트 순위 | 1986 삼성 1차지명 3순위 | |||
첫 출장 | 1986년 / KBO | |||
마지막 경기 | 1989년 / KBO | |||
경력 | ||||
| ||||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 ||||
메달 기록 |
---|
선수 생활
편집김훈기는 1986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 된 후 삼성에 입단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88년 10승(7선발승) 달성으로 80년대 삼성을 대표하는 삼각 잠수함 투수의 일원이 됐지만 1988년 시즌 막판 허리 부상을 당하여[1]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했고 그 이후 이후 부진으로 1989 시즌 이후 은퇴하였고,
한편 삼성은 김훈기의 허리 부상[2] 뿐만 아니라 방위병 신분, 팀의 주전 2루수 김성래가 시즌 막판 무릎 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3패로 탈락했다.
이후 1989년 개막전 선발투수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으나 시즌 막판 부상 탓인지[3] 준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삼성은 2차전(대구)에서 승리했을 뿐[4] 1차전과 3차전(모두 인천 원정)을 내줘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은퇴 이후
편집1989 시즌 이후 부진으로 방출, 이후 초등학교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 두경부암으로 사망했다.
통산 기록
편집연도 | 팀명 | 평균자책점 | 경기 | 완투 | 완봉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
1986 | 삼성 | 3.38 | 3 | 0 | 0 | 0 | 1 | 0 | - | 0.000 | 35 | 8 | 9 | 0 | 3 | 0 | 1 | 4 | 3 |
1987 | 4.02 | 24 | 2 | 0 | 3 | 5 | 3 (8위) | - | 0.375 | 365 | 80.2 | 82 | 5 | 41 | 7 | 22 | 42 | 36 | |
1988 | 2.75 (5위) | 27 | 6(7위) | 3 (2위) | 10 (9위) | 5 | 3 (10위) | - | 0.667 | 472 | 118 | 102 | 8 | 23 | 3 | 50 | 44 | 36 | |
1989 | 4.14 | 10 | 2 | 0 | 6 | 1 | 0 | - | 0.857 | 221 | 50 | 48 | 3 | 23 | 4 | 14 | 24 | 23 | |
통산 | 4시즌 | 3.44 | 64 | 10 | 3 | 19 | 12 | 6 | 0 | 0.613 | 1093 | 256.2 | 241 | 16 | 90 | 14 | 87 | 114 | 98 |
- 굵은 글씨는 리그 10위권 이내 기록.
여담
편집각주
편집- ↑ “프로야구 「한국시리즈」티킷을 잡아라”. 조선일보. 1988년 10월 7일. 2021년 2월 6일에 확인함.
- ↑ 그러나 언더헨드 투수들은 혹사를 하면 허리 부상을 당하는게 흔하다.
- ↑ 박건만 (1989년 10월 6일). “돌고래 호화 마운드냐…불꽃 방망이냐 사자”. 경향신문. 2021년 2월 6일에 확인함.
- ↑ 장윤영 (1989년 10월 10일). “프로야구 金(김)용국 逆轉(역전) 만루홈런”. 경향신문. 2021년 2월 6일에 확인함.
이 글은 야구인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