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협 해전

대한해협 해전(大韓海峽 海戰, 영어: Battle of Korea Strait)은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 발발 당일 경비 임무를 맡고 출동한 PC-701 백두산함과 YMS 512, YMS 518정은 상륙을 시도하기 위해 접근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형 무장 수송선을 치열한 해상 전투 끝에 격침시킨 전투이다.[1] 이 해전으로 인해 우리나라 2명의 해군 장병이 전사했다.

대한해협 해전
6.25 전쟁의 일부

1950년 3월, 하와이에서 재무장하는 PC 701함.
날짜1950년 6월 25일 ~ 6월 26일
장소
결과

대한민국의 승리

  • 부산 수비 성공
교전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휘관
김성삼 통제부 사령관 대령
김충남 제2정대 사령관 중령
김두찬 묵호경비부 사령관 중령
최용남 PC 701함장 중령
양해경 YMS 512함장 소령
박창제 YMS 518함장 소령
김상도 YMS 509함장 소령
불명
병력
구잠정 1척 증기선 1척
피해 규모
조선인민군 85mm 포탄 1발 PC-701 백두산함 조타실에 피격
2명 전사
2명 부상
1000톤 수송함 격침
600명 익사

전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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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한에 대한 대대적인 침략으로 시작되었다. 침략 기간 동안, 조선인민군 해군은 한반도의 동남쪽 해안을 따라 군대를 투입하도록 할당되었다. 1,000톤의 상선은 85mm 함포 및 기관총으로 무장했고 766 독립보병연대의 600명의 군인들을 실었다.

대한민국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진해 해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5일 오후 3시 긴급출항했다. 18시 30분을 지나 부산 오륙도 등대를 통과하면서 침로를 북으로 잡아 북상했다. 20시 12분 영일만 부근, 북위 35도 15분 동경 129도 31분 해역, 쌍안경으로 우현을 살피던 조병호 일등수병이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 최영섭 소위에게 보고했다. 우현 45도 수평선쪽에서 검은 연기를 포착한 것이다. 밤 9시반 부산에서 18마일 떨어진 곳에서 이 괴선박을 발견하였다.

백두산함은 국제기준에 따라 검문을 시작하였지만,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자 백두산함 승조원들이 탐색등을 켰을 때, 괴선박의 갑판 앞쪽에는 대포로 보이는 커다란 물체가 포장되어 있었고, 갑판에 국방색 군복을 입고 앉아있는 인원들, 중갑판 양쪽에 중기관총 2정이 배치되어 있었다. 26일 00시 30분 경 백두산함이 처음으로 3인치 함포를 적선을 향해 발포했다.

북한 무장수송선은 즉각 백두산함의 함교를 공격했다. 그 과정에 71포 탄약수 전병익 이등병조, 조타수 김창학 삼등병조는 사망했고 김종식 소위는 중상을 입었다. 백두산함은 3인치 함포로 20발을 쏴서 5발을 적함에 맞췄다. 1시간 이상 교전 끝에 6월 26일 새벽 1시 38분, 결국 북한 무장수송선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치열했던 포격전이 끝났다.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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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승리는 중대한 전략적 이득이었다. 부산은 필수적이었지만 가볍게 방어했을 뿐이었고, 만약 부산이 무너졌더라면 북한대한민국를 완전히 제압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갔을 것입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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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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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철 기자 (1992년 6월 24일). “6.25 당시 우리 해군의 첫승리인 대한해협 해전”. 《MBC뉴스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