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프로이센 대관구

동프로이센 대관구는 1933년 1월 30일 프로이센 자유주동프로이센 지역에 수립된 나치 독일대관구이다. 1935년 독일 연방의 구성국들이 전부 해체되면서 대관구가 행정구역 역할을 맡게 되었다. 1939년엔 리투아니아에게 내린 최후통첩으로 얻은 클라이페다 지역을 합병하였으며, 폴란드 합병 이후대관구 일부 지역이 단치히-서프로이센 국가대관구로 넘어갔다.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한 이후에는 벨라루스의 흐로드나 지역도 이 대관구로 합병되었다.

동프로이센 대관구
나치 독일대관구
1933년~1945년
Flag of 동프로이센 대관구
국기
국장 of 동프로이센 대관구
국장

1944년의 동프로이센 대관구
수도쾨니히스베르크
역사 
• 창설
1월 30일 1933년
• 해체
5월 8일 1945년
Preceded by
Succeeded by
프로이센 자유주
단치히-서프로이센 국가대관구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폴란드 인민공화국

전후 독일이 항복하여 동프로이센 대관구는 칼리닌그라드 지역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역으로, 다른 지역은 폴란드 인민공화국 지역으로 흡수되었으며 흐로드나 지역은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반환되었고, 클라이페다 지역은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넘어갔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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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치의 대관구(Gau) 조직은 1926년 5월 22일 나치당 회의에서 지역당 조직 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창립한 구역이었다. 이후 1933년 나치가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독일의 주 단위 행정구역이 당의 대관구 행정구역으로 대체되었다.[1]

각 대관구를 지휘하는 대관구지휘자는 점점 더 권력이 세지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외부에서 거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 지역 대관구지휘자는 정당 행정 뿐 아니라 정부 직책에도 관여하여 선전 감시 등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으며, 1944년 9월 이후에는 국민돌격대 소집과 각 대관구 방어작전 역할도 맡았다.[1][2]

이 대관구의 대관구지휘자는 생성부터 해체 내내 에리히 코흐가 맡았다.[3][4]

같이 보기

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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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ie NS-Gaue” [The Nazi Gaue]. 《dhm.de》 (독일어). Deutsches Historisches Museum. 2017년 1월 9일에 확인함. 
  2. “The Organization of the Nazi Party & State”. 《nizkor.org》. The Nizkor Project. 2016년 11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월 9일에 확인함. 
  3. “Übersicht der NSDAP-Gaue, der Gauleiter und der Stellvertretenden Gauleiter zwischen 1933 und 1945” [Overview of Nazi Gaue, the Gauleiter and assistant Gauleiter from 1933 to 1945]. 《zukunft-braucht-erinnerung.de》 (독일어). Zukunft braucht Erinnerung. 2017년 5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월 20일에 확인함. 
  4. “Gau Ostpreußen”. 《verwaltungsgeschichte.de》 (독일어). 2018년 5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월 20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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