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
이 문서에는 분류가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적절한 분류를 다신 후 이 틀을 제거해주세요. |
이 문서는 위키백과의 편집 지침에 맞춰 다듬어야 합니다. (2024년 8월 27일) |
류승(柳陞) 1248년(고종 35)-1298년(충렬왕 24)
1. 생애(근거 및 참고문헌 :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기록)
류승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희원(希元)이고 시호는 시호 정신(貞愼)이다. 아버지는 첨의중찬(僉議中贊) 류경(柳璥)이며, 어머니는 평양군부인(平壤郡夫人) 단양 장씨(丹陽 張氏)로 낭장(郎將) 장세의(張世儀)의 따님이다. 1248년(고종 35)에 태어났다. 고려 무신정권 시기 임연이 정권을 잡은 후 1269년(원종 10) 4월 임자일 평장사 류경이 흑산도로 귀양가고, 류경의 아들인 행수(行首) 류승과 시랑 주열, 장군 김정 등도 섬에 귀양갔다. 1287년(충렬왕 13) 2월 경신일에 좌부승지, 1291년 9월 을미일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판삼사사(判三司事) 한희유(韓希愈)와 함께 강화의 진(鎭)에 머무르면서 병란으로 피해를 입은 고을의 조세를 감면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1292년 윤6월 신해일에 최유엄과 함께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임명되고 1294년 7월 병자일에 직사관(直史館) 권한공(權漢功)과 함께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파견되어 원 황제의 생일을 축하했다. 1295년 1월 기사일 지밀직사사에 임명되고 이후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에 이르렀으며 1298년 5월 임자일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2. 평가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류승은 오랫동안 합문(閤門)에 있었다. 합문은 조회(朝會)•의례(儀禮) 등 국가 의식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당시 당시 예문(禮文)이 산실(散失)되고 없었기에 유승이 신의(新儀)를 편찬하였는데 그 내용이 아주 상세하였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그대로 본받아서 쓰게 되었다.
류승은 어버이를 섬기는 데 효성을 다하여 관직에 있으면서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기생들과 좋아하여 노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돈이나 이익이 생기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으며 탄환(彈丸-둥근 알맹이를 퉁기는 일)을 잘 하여 한 번 퉁기면 반드시 명중하였다고 전한다.
3. 가족, 혼인 관계 및 주요 후손들(근거 및 참고문헌 : 문화류씨가정보, 씨족원류 및 해당 가문의 보첩, 족보류들)
류승의 누이(류경의 딸)는 여흥 민씨(驪興 閔氏) 가문의 자의 도첨의찬성사(咨議都僉議贊成事) 민훤(閔萱 ; ?-1310)과 혼인했다. 민훤은 명종 시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태자태사 민영모(1115-1194)의 현손이다(민영모-민식-민인철-민부-민훤) 류승의 부인 남양 홍씨는 홍진(洪縉 ; ?-1266)의 딸이다. 홍진은 이자겸의 난 당시 순절한 홍관(?-1126)의 현손(홍관-홍지유-홍원중-홍사윤-홍진)이다. 1270년 송송례(宋松禮 ; 1207-1289) 등과 함께 임유무(임연의 아들)를 제거하여 무신정권을 완전히 종식시킨 홍규(洪奎 ; 1242-1316 / 처음 이름은 홍문계)가 홍진의 아들이다. 충혜왕과 공민왕의 어머니인, 충숙왕비 명덕태후 홍씨(1298-1380)가 홍규의 다섯 번째 따님이다. 정리하면 류승은 명덕태후의 고모부이다. 류승은 부인 홍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류인명(柳仁明), 류인전(柳仁全), 류돈(柳墩 ; 처음 이름은 류인화 柳仁和), 류인기(柳仁琦) 등을 두었다. 류승의 장남 류인명은 고성 이씨 가문 이존비(1233-1287 ; 유경의 문생)의 딸과 혼인했다. 조선 초기 사육신의 한 사람인 류성원(?-1456)은 류인명의 5대손(류인명-류정-류유-류호-류사근-류성원)이다. 광해군의 장인인 류자신(1541-1612)은 류인명의 9대손(류인명-류정-류홍-류중의-류소로-류승조-류제근-류수천-류잠-류자신)입니다. 류인명의 사위는 담양인 이예(李藝)이며, 이예의 사위 김천서의 따님이 조선 정종 비 정안왕후(1355-1412)이다.
류승의 삼남 류돈(1274-1349)의 장남 류총(柳總)의 아들이 류만수(柳曼殊 ; ?-1398)이다. 류만수는 고려 공민왕 대에 문음(門蔭)으로 보마배행수(寶馬陪行首)에 보임(補任)되고, 1363년 장군(將軍)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냈다. 1377년(우왕 3) 8월 이성계(후일의 조선 태조)와 함께 서해도에 침입한 왜구 토벌에 참여했고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참여했으며 조선 건국 후 개국원종공신, 회군공신에 추록되었다. 조선 태종, 세종 시기 영의정 류정현(柳廷顯 ; 1355-1426)이, 류돈의 차남 류진(柳鎭)의 아들이다. 류승의 사남 류인기(1283년 생)의 증손자가 문성부원군 우의정 류량(柳亮 ; 1355-1416)이다. 류량은 조선 왕조 초기 국가 제도 확립에 기여했다. 류승의 사위는 안동 권씨 가문의 권보(權溥 ; 1262-1346)이다. 권보의 직계 후손들 가운데 권근, 권람, 권철, 권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