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투이(베트남어: Mạc Thúy / 莫邃 막수, ? ~ 1412년)는 대월 쩐 왕조, 호 왕조 시기 찌린현(至靈縣) 롱동랑(隴洞廊, 현재의 하이즈엉성 남삭현 남떤사) 사람이다. 쩐 왕조의 재상인 막딘찌의 손자이자 막자오의 아들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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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년, 명나라호 왕조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막투이는 박장 등 부현(府縣)의 기로(耆老) 1,200명과 함께 쩐씨의 자손이 호꾸이리에게 모두 살해되었음을 선언하고 명나라에 베트남을 과거처럼 중국의 군현으로 회복시켜달라고 청하였다.[1] 명나라는 호꾸이리, 호한뜨엉 부자를 사로잡은 뒤 그들이 건의한 대로 행하였다. 구준(丘濬)의 《평정교남록(平定交南錄)》에는 막투이가 호한트엉과 그의 태자를 사로잡았다고 되어 있다.[2]

명나라는 교지포정사사(交趾布政使司)를 설립하고 막투이를 우참정(右參政)으로 삼았다. 1408년, 간정제가 병사를 일으켜 후 쩐 왕조를 세우고 명나라에 저항하였다. 막투이는 장보를 따라 간정제의 거점인 연주(演州)를 공격하였다. 간정제와 당떳은 장보를 대적하지 못하여 화주(化州)로 달아났다. 명나라군은 그대로 추격하여 보찐해구(布政海口)에 이르렀다.[3]

1412년, 농문력(農文歷)이 르엉선(諒山)에서 반란을 일으켜 명나라군이 이동하는 도로를 막은 뒤 수많은 명나라군을 죽였다. 막투이는 병사를 이끌고 농문력을 토벌하러 갔으나 고립되어 깊숙이 들어갔다가 독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4]

1527년, 막투이의 현손인 막당중막 왕조를 세운 뒤 막투이의 묘호를 유조(裕祖), 시호조복홍도적덕황제(肇福弘道積德皇帝)라고 하였다.[5]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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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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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역주자록(殊域周咨錄)·권5·남만(南蠻)·안남(安南)》:會有南策州人莫邃等同北江等府縣耆老千百二十人詣軍門言:「陳氏子孫被黎賊殺盡,無可繼承。安南本中國故地,願復郡縣,設官分理,以沐聖化。」即日遣人馳奏,謂:「臣伏計黎賊父子旦夕就誅。郡邑既平之後,宜有所統。陳氏已絕,無可訪求。必合開設都布按三司以總率郡縣,撫輯兵民。」奏上,群臣亦以為請,上曰:「俟黎賊父子悉擒而後處置。」
  2. 丘濬《平定交南錄》:丙子,莫邃下土人武如卿五人獲偽國主黎蒼及其偽太子芮於高望山。凡黎氏親屬俘獲無遺,安南地悉平。
  3. 《大越史記全書·本紀·卷之九》:〔興慶〕戊子二年、明永樂六年,春正月三十日,明將張輔、土官莫邃等犯演州,帝與鄧悉以眾寡不敵,南行化州。明人追之,犯布政海口。
  4. 《大越史記全書·本紀·卷之九》:〔興慶〕壬辰四年、明永樂十年……諒山農文歷聚兵據其地,扼塞明人往來之路,殺獲無算。參政莫邃常領兵深入,中毒箭死。
  5. 黎貴惇《大越通史》逆臣傳 莫登庸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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