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천회맹(蚊川會盟)은 임진왜란 영남 의병장들의 맹약이다.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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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천회맹임진왜란 발발로 영남의 요처들이 왜군에게 침탈되자, 경주를 중심으로 영남 각지에서 거병한 유현(儒賢) 등 의병장들이 경주부윤 윤인함과 판관 박의장을 필두로 1592년 6월 9일[1] 경주 문천에 모여 마혈(馬血)을 나누어 마시고 민군이 합세하여 결사항전을 다짐했던 회합이다. 1593년 2월 문경당교회맹(唐橋會盟), 1593년 10월 언양구강회맹(鷗江會盟), 1596년 3월 대구팔공산회맹(八公山會盟), 1597년 7월의 화왕산회맹(火旺山會盟)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문천회맹에 참여했던 의병장들 중 살아남은 다수가 구강회맹, 팔공산회맹화왕산회맹에 참여하였다.[2]

문천(蚊川)은 경주의 남쪽을 흐르는 하천으로 남천이라고도 부른다.

문천회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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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천회맹록(蚊川會盟錄)은 여러 본이 있는데, 동엄실기(東广實紀)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3]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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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계실기에는 '6월 19일'로 되어 있다.
  2. 문천회맹록과 문옹선생실기의 '구강회맹록'과 '팔공산회맹록', 또한 '용사세강록'을 대조해보면 이름이 겹치는 의병장들이 다수 있다.
  3. 동엄실기
  4. 죽계실기에는 경주지역에 포함하지 않고 '부윤(府尹)'으로 별도 표시하였다.
  5. 죽계실기에는 영해지역에 포함하지 않고 '판관(判官)'으로 별도 표시하였다. 박의장(朴毅長, 1555∼1615)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맹활약을 하고, 뒤에 경상좌병사 및 공홍도수사(公洪道水使)를 거쳐 경상수사가 되었다.
  6. 자는 이강(而剛), 현룡(見龍)의 아들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7. 죽계실기와 견천지의 송고실기에는 울산지역 의병장으로 '박손(朴孫), 전개(全玠), 이한남(李翰南), 유영춘(柳榮春), 유백춘(柳伯春), 전영방(田永芳), 박경열(朴慶悅)' 7인을 추가하였다. 송고실기에는 '전영방(全永芳)'으로 되어 있다.
  8. 죽계실기에는 '정안번(鄭安藩)'으로 되어 있다. 정안번정의번의 아우다.
  9. 죽계실기에는 '전삼달(全三達)'이 추가되었다. 전삼달전삼익의 아우다.
  10. 죽계실기에는 '호민수(扈民秀)'로 되어 있다.
  11. 죽계실기에는 양산지역 의병장들이 빠져있다.
  12. 죽계실기에는 언양지역 의병장들이 빠져있다.
  13. 언양지역의 거부로서 실제 전투에 참여하기 보다는 군수 지원에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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