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규 (190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독립운동가, 농업경제학자,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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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규(朴文奎 1906년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농업경제학자, 사회학자, 정치가이다.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출신.
생애
편집1925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진항하였다. 경성제대 예과를 거쳐 동 대학 법문학부에 진학, 1929년 졸업하였다. 1931년 모교인 경성제국대학의 조교로 있으면서 성대반제운동사건(城大反帝運動事件)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뒤 1944년 여운형(呂運亨) 지도하에 건국동맹이 결성되자, 가입하여 건국동맹 맹원으로 활동했다.
1945년 8․15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기획부장에 선임되었고, 9월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으로 개편되자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의 중앙위원이 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선전부장에 피선되었다. 1946년 말 남조선로동당이 창당되자 1948년 8월 월북하기 직전까지 남로당 중앙위원으로 있었다.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허헌 등과 월북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시, 농림상에 발탁되었다.(1948년 9월 9일)[1] 이후 1957년 9월 20일 국가검열상, 1959년 지방행정상, 1962년 내무상, 1970년 노동당 중앙위원 등을 지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김일성내각 組閣을 완료”. 경향신문. 1948년 9월 11일. 1면.
전임 - |
제1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농림상 1948년 9월 ~ 1954년 3월 |
후임 김일 |
전임 리효순 |
제5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검열상 1957년 9월 20일 ~ 1959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방행정상 1959년 ~ 1962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무상 1962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