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환 (1918년)
박승환(朴承煥, 1918년 ~ 1947년)은 만주군 조선인 장교로 건국동맹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경기도 파주 출신. 대한민국 제3·4공화국의 경제 관료이자 제8·9·10·14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명근의 삼촌이다.
박승환 朴承煥 | |
출생일 | 19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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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일제 강점기 조선 경기도 파주군 |
사망일 | 1947년(28–29세) |
사망지 | 북조선인민위원회 조선 |
본관 | 밀양 |
배우자 | 김순자 |
친척 | 조카 박명근 |
복무 | 만주국군 |
복무기간 | 1937년~1945년(만주국군) |
최종계급 | 만주국군 중위 |
기타 이력 | 건국동맹 조직원 |
경력
편집1918년 경기도 파주군 월롱면의 대지주였던 박우용의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경성제2고보를 졸업한 뒤 1년간 집에서 쉴 때 몽양 여운형과 접촉하고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는 1937년 만주 봉천군관학교 7기생으로 들어갔는데 여운형의 권고 때문이었다. 졸업후 박승환은 1년간 기병장교로 근무하다가 항공장교로 전과했다. 조종사가 된 것이다. 그는 봉천항공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했다.[1]
1942년 봉천의 조선인 유지였던 김태덕(金泰德)의 둘째딸 김순자와 결혼하였는데, 이는 여운형이 일본군 장군 홍사익에게 부탁해 성사된 것으로 김태덕의 그늘을 빌려 박승환의 조직 활동을 엄호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1]
1943년 여운형의 명령으로 중국 연안에 잠입하여 김무정을 만나고 왔다. 1944년 8월 건국동맹이 조직되자 국내진공작전을 목적으로 지하운동을 했다. 1945년 4월말 재차 연안에 가서 조선의용군과의 항일협동작전을 논의했다.[1][2][3]
1946년 여운형의 지시에 따라 최창륜, 박창암, 박임항, 방원철 등 만주군 출신 장교들과 함께 월북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조선인민군 창설에 참여하였으나, 1947년 여운형 암살 사건 이후 숙청되어 감옥에서 옥사하였다.[4]
각주
편집- ↑ 가 나 다 조갑제. “박정희 전기-박승환 중위”. 조갑제닷컴. 2020년 1월 25일에 확인함.
- ↑ 조갑제,이동욱. “박정희 전기-박승환과 박정희”. 조갑제닷컴. 2020년 1월 25일에 확인함.
- ↑ 특별취재반 (1984년 1월 23일). “(37) 국내진정작전 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 중앙일보. 2020년 1월 26일에 확인함.
- ↑ 조갑제,이동욱 (1998년 3월 17일). “[박정희의 생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132)”. 조선일보. 2020년 1월 25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