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홍산현 관아
부여 홍산현 관아(扶餘 鴻山縣 官衙)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이다.[1] 홍산면은 조선시대 행정구역 상 충청도 홍산현으로 현감이 다스리는 고을이었다. 조선시대 옛 고을의 핵심시설인 객사와 동헌이 비교적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매우 드문 예라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2]
대한민국의 사적 | |
종목 | 사적 제481호 (2007년 7월 31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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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29,205m2 |
시대 | 조선시대 |
위치 | |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동헌로 38 일원 (산성리) |
좌표 | 북위 36° 12′ 53″ 동경 126° 45′ 19″ / 북위 36.21472° 동경 126.75528°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역사
편집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여군에 편입되기 전까지 홍산현은 독립적인 현이었다. 백제 시기엔 대산현으로 불렸다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뒤 한산(翰山)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고려 초에 현산현으로 불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시기엔 속현이었다가 1413년(태종 13년)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3] 임진왜란 와중에는 이몽학의 난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4]
홍산현 관아에 대한 기록은 여지도서(1757~1765), 홍산읍지(영조이후), 호서읍지(1892~1895), 서울대 규장각 소장 홍산현지도를 들 수 있다.[5] 홍산현은 대동미를 수납하는 홍산창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의 중요 요지였다.
건물
편집홍산현 관아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 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최소 두 번 이상의 중건이 있었다.[6] 현재의 홍산현 동헌은 1871년(조선 고종 8년) 군수 정몽화가 세웠고[7], 객사는 1836년 현감 김용근이 세웠다. 동헌과 객사 모두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되었으나 다행이 조선 후기 동헌과 객사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다.[7] 홍산현 관아는 2010년 본격적인 복원 사업을 시작했으며, 각종 집기를 보관하던 관청(官廳)과 같은 건물이 추가로 복원 건축되었다.[8] 남아 있는 건물은 다음과 같다.[6][9]
동헌
편집홍산현 동헌은 제금당(製錦堂), 정사당(政事堂), 현악당(賢樂堂), 한산 정사당(翰山政事堂), 청성헌(淸省軒) 등의 당호가 있으며 그 가운데 한산 정사당과 제금당의 편액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었다. 가로 7 칸, 세로 2칸의 목조 건물로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서로 크기가 다른 온돌방이 있다. 1914년 홍산현이 부여군에 통합된 이후 홍산현 관아는 일본군 헌병대의 사무소로 쓰였다.[3] 1945년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6] 홍산지서로 활용되었다가 1984년 보수하였다.[7]
아문
편집동헌의 출입문이었던 아문인 집홍루는 1964년 부소산성 안의 영일루 자리로 옮겨졌다. 현재의 아문은 1995년 복원한 것이다.
형방청
편집형방청은 잠시 수감시설로 사용하다가 1914년에 잠업 전습소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개인의 살림집으로 사용되면서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9호(이정우가옥)로 지정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가운데 치안을 맡았던 형방청이 남아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4]
객사
편집홍산 객사는 1909년 이후 학교로 쓰였다가[3] 해방 이후엔 홍산면 면사무소로 사용되었다.[9]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 부여 홍산현 관아, 문화재청
각주
편집- ↑ 홍산현 관아, 문화재청
- ↑ 부여 홍산현 관아, 부여군
- ↑ 가 나 다 김종영 외, 〈조선 후기 현산현 관아 건축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학술대회 발표 논문집 - 계획계》, 25(1), 2005년 10월
- ↑ 가 나 충남 관아건물의 대표 홍산동헌, 그리고 이몽학의 난, 오마이뉴스, 2007년 8월 29일
- ↑ 문화재청 공고 제2007 - 130호, 〈사적 지정 예고〉, 문화재청장
- ↑ 가 나 다 부여 홍산현 관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가 나 다 홍산동헌 Archived 2018년 6월 18일 - 웨이백 머신, 대한민국 구석구석
- ↑ 홍산 옛 관아 복원 사업 “개토제” 거행, 충남넷, 2010년 2월 24일
- ↑ 가 나 홍산현 문화재 관광지, 부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