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Kanival/드니프로 전투
2차 세계대전 중 1943년에 있었던 드니프로 하류의 전투는 양측의 병력 400만여 명이 1400 킬로미터의 전선에서 대치했던, 세계사에서 가장 큰 전투 중 하나이다. 4달 동안의 전역에서 소련군이 강을 도하해 몇몇 교두보들을 만들어 좌측 기슭을 해방시키고, 우측 기슭의 키예프도 해방시켰다.
이 전투는 가장 잔혹했던 전투 중 하나이며 양측에서 170만에서 270만여 명 사이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된다. 이 전투에 휘말린 지역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몇몇 역사가들은 이 전투를 전투로 고려하지 않고, 스탈린그란드를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투로 본다.
준비 쿠르스크 전투의 종결 후 독일 국방군은 주도권 회복의 희망을 잃었다. 피해는 심각했고, 더욱 나쁜 점은 이전의 전투들에서 최고의 병사들이 전사했기 때문에 군대 전체의 숙련도가 떨어졌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적지 않은 수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방군은 오직 방어만을 할 수 있었다.
8월 중순에 히틀러는 소련의 공세를 연합군 사이의 불일치가 일어나지 않는 한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여러 방어물들을 지어 붉은 군대를 지연시키기로 결정했고, 국방군에게 드니프로 강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수할 것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그 동안 상실한 지역들의 탈환을 결심했고, 그 해 초기부터 그 일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산업지역들은 조밀한 인구분포를 지녔고, 석탄을 비롯한 광물 광산들은 소련에게 소중한 자원들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의 주축은 남쪽방향이었고, 북쪽지역들은 이 공세의 목표에서 제외되었다.
시작 독일군의 방어 구축 "동쪽 방벽"이라고 알려진 드니프로 방어진의 건설 명령은 1943년 8월 11일에 내려졌고, 즉각적으로 건설에 착수되었다.
방어물들은 드니프로 전역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거대한 벙어진을 그런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동쪽 방벽"은 완성되지 못 했다. 대신 방어물들은 크레멘추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