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칙 양씨
사칙 양씨(司則 楊氏, 생몰년 미상)는 조선 문종의 후궁이다.
사칙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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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사칙) |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조선 |
사망일 | 미상 |
사망지 | 조선 |
왕조 | 조선 |
가문 | 미상 |
배우자 | 문종 |
자녀 | 경숙옹주 외 1녀 |
생애
편집궁녀 출신이며, 자세한 가계나 본관, 생몰년 등은 전하지 않는다.[1] 다만 《청룡사사지》에 의하면 양씨는 문종과 동갑이며, 신분은 미천하였다고 한다. 13세 때 궁인으로 들어왔는데, 자색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당시 세자빈(순빈 봉씨)은 부덕하여 세자(문종)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런 와중에 양씨가 세자의 눈에 들어 딸(경숙옹주)을 낳았다고 한다. 이에 봉씨는 자신은 세자의 사랑도 받지 못 하고 아이도 낳지 못 하는데 양씨가 아이를 낳자, 질투심에 양씨를 죽이려다가 도리어 폐출당했다고 한다.[2]
한편 조선의 모든 후궁 중 사칙이라는 호칭을 받은 것은 양씨가 유일하다. 사칙은 왕세자궁에 딸린 내명부의 벼슬 중 하나이며, 1405년{태종 5년)에 설치되었다. 예의와 알현에 관한 일을 담당하며, 품계는 종6품이다. 《경국대전》 제정 후 수칙(守則)으로 호칭이 바뀌었다.[3][4][5]
실록에 의하면 양씨는 적어도 세종이 승하하는 1450년(세종 32년) 이전에 이미 문종의 후궁이 되어 경숙옹주를 낳았던 것으로 보이며,[6] 이후 양씨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양씨는 경숙옹주 외에도 딸을 하나 더 낳았던 듯 하나, 그 딸은 1451년(문종 1년) 2세를 일기로 죽었다.[7][8] 한편 경숙옹주는 1454년(단종 2년) 음력 4월 강자순과 혼인하였다.[9]
가족 관계
편집문종 | 사칙 양씨 | ||||||||||||||||||||||||||||||
강자순 | 경숙옹주 | 왕녀 | |||||||||||||||||||||||||||||
각주
편집- ↑ 신명호 외 (2013년 12월). 《조선왕실 왕비와 후궁의 생활》. 국립고궁박물관. 72쪽.
- ↑ 한국콘텐츠진흥원. “단종의 비애”.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년 7월 7일에 확인함.
- ↑ 문종실록 13권, 문종 2년 9월 1일 경인 3번째기사
- ↑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사칙”. 《네이버 지식백과 - 한국고전용어사전》.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7년 7월 7일에 확인함.
- ↑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장장”. 《네이버 지식백과 - 한국고전용어사전》.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7년 7월 7일에 확인함.
- ↑ 세종실록 112권, 세종 28년 6월 6일 임인 2번째기사
- ↑ 심량근. “사칙양씨”.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7월 7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문종실록 9권, 문종 1년 8월 12일 정축 1번째기사
- ↑ 단종실록 11권, 단종 2년 4월 16일 정유 1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