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타케 요시즈미 (1637년)
사타케 요시즈미(일본어: 佐竹義処, 1637년 10월 9일 ~ 1703년 8월 5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구보타 번의 3대 번주이다. 어릴적 이름은 도쿠주마루(徳寿丸)이며, 통칭은 지로(次郎)이다. 관위는 종4위하, 시종, 좌소장(左少将), 우쿄노다이부(右京大夫)이다.
사타케 요시즈미 佐竹義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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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도쿠주마루 |
출생 | 1637년 10월 9일 |
사망 | 1703년 8월 5일 요코테성 |
성별 | 남성 |
국적 | 일본 |
경력 | 구보타 번 3대 번주 |
직업 | 다이묘 |
활동 기간 | 1672년 ~ 17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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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에이 14년(1637년), 선대 번주 사타케 요시타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쇼호 3년(1646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를 알현하고, 조오 3년(1654년)에 종4위하, 우쿄노다이부에 서임되었다. 간분 12년(1672년), 아버지 요시타카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번주직에 올랐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속하여 번 재정을 악화시켰고, 16만 냥에 달하는 빚을 지었다. 평정소 설치, 새로운 관직 설치, 구법과 옛 직책 폐지 등의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효과는 없었다. 겐로쿠 14년(1701년), 동생 요시나가에게 2만 석, 조카 요시쿠니에게 1만 석 영지를 나누어주었다. 겐로쿠 16년(1703년), 영내의 요코테성에서 6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맏아들 요시미쓰는 요절하였고, 둘째 아들 요시타카는 소마 나카무라 번주가 되어서, 셋째 아들 요시타다가 구보타 번주직을 계승했다.
전임 사타케 요시타카 |
제3대 구보타 번 번주 1672년 ~ 1703년 |
후임 사타케 요시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