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돈암장

1939년 성북동에 건축된 한옥

서울 돈암장(서울 敦岩莊) 한옥 본채는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1939년에 건립된 한식 목조 팔작지붕으로 궁궐에 살았던 내시 송성진이[1] 기거할 집으로 지은 근대시기 한옥주택이다. 후일 무형문화재74호로 지정된 배희한(1907-97)이 31세 때 지었다.[2]

서울 돈암장
(서울 敦岩莊)
(Donamjang House, Seoul)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가등록문화재
종목국가등록문화재 제91호
(2004년 9월 4일 지정)
면적건축면적 155.17m2
수량1동(한옥 본채)
시대일제강점기
소유김수근
위치
서울 돈암장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서울 돈암장
서울 돈암장
서울 돈암장(대한민국)
주소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3길 84 (동소문동4가 103-3)
좌표북위 37° 35′ 29″ 동경 127° 0′ 29″ / 북위 37.59139° 동경 127.00806°  / 37.59139; 127.00806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6.25이후 일부 분리 매각된 돈암장을 고 대성산업 김수근 회장이 매입하여 본체뒤로 새로운 집채를 달아내었고 김수근 회장 내외가 작고한 후에는 본채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총 4개의 건물가운데 원형을 유지한 본채만 2004년 9월 4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3]

돈암장과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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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5월, LIFE 잡지에 실린 돈암장 근처에서 찍은 이승만프란체스카 부부.

­이승만 박사가 1945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에 2년간 거처한 곳으로 근대정치사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이 집은 당시 조선타이어주식회사 사장이었던 장진영(張震英)으로부터 빌린 집으로, 장진영은 연건평 약 150평의 3채 중 1채만을 쓰고, 양옥이었던 안채 54평과 또다른 1채를 빌려주었다. 이승만이 거주했던 양옥 자리에는 현재 교회가 들어서있다.

시대적으로 극도의 혼란이 거듭되는 가운데 이승만은 장진영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통고를 받았고, 이 소식을 들은 미조선주둔군사령관인 하지(Hodge,j. R.)중장의 주선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다나카(田中)가 쓰던 마포장(麻浦莊)을 얻어 이사하였다.[4]

당시 집주인 장진영은 6.25때 납치되어 죽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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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용헌. “[조용헌 살롱] 장급(莊級)저택의 주인들”. 조선일보. 2020년 4월 9일에 확인함. 
  2. 정성희. “1930년대 한국 주택 정원의 변화 양상 분석”. 《조경학 석사학위 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3. 문화재청고시제2004-43호(문화재등록), 제15788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04. 9. 4. / 26 페이지 / 493.6KB
  4. 권영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우남 이승만 관련 주택. 사저·저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1년 12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4월 9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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