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극례 (1556년 ~ 1597년) 은 조선시대의 인물이다.

선극례
출생1556년
사망1597년
경상도 울산
사인울산전투 중 전사
성별남성
국적조선
본관보성
별칭자는 예중, 호는 의재
경력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직업무관, 군인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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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선씨 시조 선윤지의 9세손이다[1]. 조선 중기의 무신, 子는 예중禮中, 호는 의재(義齋)이다.

어려서부터 의용이 간중하고 기국(器局) 홍대강인하여 효성과 우애가 출중하였다. 1576년에 병자과 무과에 급제하시어 호방(虎榜)에 수위(首位)로 발탁되셨다. 등과 후 무관으로 경관직인 오위(五衛)에 출사 부장(部將) 위장(衛將) 등의 직을 두루 역임하시고 마침내는 절충장군으로 품직되어 위국과의 전운이 짙은 시기에 외관직인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피명(被命)되었다. 정유재란이 끝난 선조32년(1605), 선조임금으로부터 그 충절을 높이 기려 선무원종 일등공신으로 상훈 하고 옥배를 은사, 수사공으로 제수받았다[2].[3]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작천정 앞 큰 바위에 새겨진 선무원공신 10위와 함께 작위, 존함, 본관이 새겨져 있다. 울산 충의사에 배향되어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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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옹선생문집 2권74면에 보면 선인적이 백수를 누린 사유가 며느리 이씨의 효행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포상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가 있다. 이글에서 "文校理宣一德之六世孫也宣武功臣宣克禮之子(홍문교리 선일덕의 육세손이며 선무원종공신 선극례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다.
  2. 양산군지(梁山郡誌) 梁山郡誌卷之二 (新補)忠義 46면 宣克禮 字禮中官大護軍萬曆壬辰行慶尙左水使戊戍殉節宣祖朝錄原從一等功臣恩賜玉杯錄券 (선극례 자 예중 관 대호군 임진 행 경상좌수사 무수순절, 선조조 록 원종일등공신 은사 옥배 녹권)
  3. 김해읍지(金海邑誌) 武科 110면 宣克禮 壬辰亂宣武原從一等功臣行大護軍慶尙道左水使兼釜山僉使 (선극례 임진란 선무원종 일등공신 행 대호군 경상도좌수사 겸 부산첨사)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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