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교회
성도교회는 서울시 중구 회현동 1가 181-8번지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수도노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1947년 6월 21일 서울 광화문에 있었던 피어선성경학교(현 평택대학교)에서 이인식 목사, 김양선 목사, 선우훈 장로, 김영서 장로를 비롯하여 교인 60여 명이 배민수 목사와 함께 교회가 창립되었다. 이 교회의 담임 사역자로는 황은균 목사, 총신대학교의 김희보 박사(1960년 부임), 목회자 출신으로 김성환 목사(1972년 부임), 장경두 목사, 고영민목사, 장정일목사가 사역하였다.[1] 1964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 49회 총회가 성도교회에서 열렸다.[2][3] 옥한흠 목사가 처음으로 대학생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킨 교회로 내수동교회와 함께 잘 알려져 있다. 총신신학대학원 황성철 박사와 남포교회의 박영선 목사도 이 교회에서 사역하였다. 박성수회장과 방선기교수도 이 교회 출신이다. 현재는 박성기 목사가 담임이다.
교회연혁
편집설립과 초기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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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와 제자화
편집성도교회의 대학부는 옥한흠 목사의 새로운 성경공부로 제자화 훈련이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성경공부 방식과 대학생 선교회(C.C.C.)의 전도모델을 병합한 방식이었다. 성경공부의 주교재로 네비게이토에서 나온 성경공부 교재를 사용했고 신앙적 실천으로 전도사역은 대학생선교회 방식이었다. 신앙의 방식은 성경읽기, 암송,그리고 묵상(Q.T.)과 실천, 전도와 양육 그리고 리더훈련 등이었다. 이 방식은 이론과 실재가 잘 조화된 당시로서는 최고의 제자화 훈련이었다. 옥한흠 목사는 38세의 나이에 미국 유학시절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네비게이토 본부에 머물면서 각종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제자훈련 사역을 펼치고 있는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체험했다. 후에 사랑의 교회에서 완성도를 높혀 제자훈련을 이어갔다.[4]
성도교회 출신자들
편집성도교회의 사역자와 출신자로는 총신대학교의 김득룡 박사, 옥한흠 목사, 황성철교수(총신대학교) 교수, 국동출 목사, 박영선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방선기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비롯한 박성수, 한정국(한국세계선교협의회), 박성남, 김광일, 노현숙, 이성옥, 한인권, 이인호, 황태연, 정세열,[5] 한병혁(태화기독국제학교 전 교장),[6] 정문렬(서강대), 세계적인 수학학자인 김강태(포항공대)[7], 김신, 손인문, 김복만, 안명준(평택대), 고문규(건양대), 장경(단국대), 홍원표(한밭대), 권영식(동국대), 안덕수, 백상조, 권상철등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1970년에 옥한흠 목사의 성경공부와 제자화훈련을 통하여[8] 대한민국의 교회가운데 대학생만 200명이 넘는 대학부를 가진 교회였다.[9] 또한 당시 대학부 출신들의 백여명이 박사, 교수, 목사, 그리고 선교사들이 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성도 장로교회, 한국기독교대사전 (성은출판사:1978), 470
- ↑ 대한예수교장로회 제 49회 총회(1964), 리폼드뉴스, 2008, 1,1 05
-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회의록 1961-1965 (서울:1969,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83
- ↑ 목사가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통해 남긴 것
- ↑ 정세열 교수, 옥한흠 목사의 제자행전10. Disciple, 2006, 06
- ↑ 태화기독국제학교
- ↑ 김강태 포항공대 교수, 세계적학술지 주필로 선임, 중앙일보, 2013.12.05[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제자훈련에 미친 아버지에 ‘자격 없다’는 아들 보며, 크리스천투데이, 2010, 09,02
- ↑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5편> ‘광인 목회’로 평신도 일으켜 교회를 개혁하다 국민일보, 2017, 0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