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명 (1923년)
송인명(宋寅明, 1923년 1월 18일 ~ 2012년 9월 5일)은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송인명 宋寅明 | |
출생일 | 1923년 1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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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주군 안정면 |
사망일 | 2012년 9월 5일 | (89세)
사망지 | 미국 뉴욕 주 뉴욕 시티 |
학력 |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
복무 |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해병대 |
복무기간 | 1946년 ~ 1963년 |
근무 | 해병대 진해교육기지사령부 |
최종계급 | 대한민국 해병 준장 |
지휘 | 해병대 진해교육기지사령부 부사령관 |
주요 참전 | 한국 전쟁 |
생애
편집광복 이후 미 군정시기인 1946년 2월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했고 그 후 해병대 창설 멤버가 되었다. 한국전쟁 시기엔 해병대 목포경비사령부 부참모장을 역임했으며 휴전 후엔 해병대 묵호기지사령부 참모장, 해병대 제1연대장, 해병대 진해교육기지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하다 1963년 1월 15일 해병대 준장으로 예편했다.
예편 직후부터 정치계에 투신하여 같은해 2월, 민주당 창당준비대회대표로 위촉됐다가 공화당에 입당하여 공화당 경북 영덕·청송 지구당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공화당을 탈당한 후 10월에 일어난 대학생 반혁명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이듬해인 1964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예비역 이등병으로 강등된다.[1][2]
1980년에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같은 해 당내 갈등을 겪으며 신민당 탈당을 하였고 민주화가 된 1988년 6월엔 정치적 문제로 강등됐던 장성들과 함께 계급이 복권되어 다시 예비역 준장이 되었다.[3] 민한당에 입당하였지만 결국 당내에서 자신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민한당 탈당을 하였으며 민정당 입당하여 민정당에 공천 신청을 했다 탈락하자 민정당 탈당하고 미국으로 이민, 미국 동부지역 한인회에서 활동하였으며,[4] 2012년 9월 5일 미국 뉴욕에서 사망하였다.[5]
학력
편집- 1951년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 1953년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 1955년 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졸업
- 1957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논란 관련 사태
편집김대중 병역 논란 당시 증언
편집1997년엔 대선을 앞두고 군 복무 시비에 휘말린 김대중 후보의 목포해상방위대 복무 사실을 증언했으나[6], 일각에서는 송인명의 증언은 공식문서가 아니라고 하며 김대중은 해군에 공식 복무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다.[7]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一部學生反革命隂謀의背後人物 宋寅明{豫備役准將}체포 동아일보 1963.11.11
- ↑ 宋寅明에執猶 反革命사건宣告 경향신문 1964.07.02
- ↑ 강등將星등 兵籍회복 병역법改正법률 발효 경향신문 1988.06.30
- ↑ 송인명 미동부영남향후회 신임 회장 Archived 2015년 7월 15일 - 웨이백 머신 미주한국일보 2003.02.20
- ↑ 재미 워싱톤 해병대전우회 게시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金총재 군복무증언록' 공개 경향신문 1997.08.23
- ↑ “보관된 사본”.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2월 4일에 확인함. 해군본부 2010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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