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량흘
숙량흘(叔梁紇: 기원전 622년 ~ 기원전 549년)은 춘추시대 노나라의 군인으로, 성은 자(子), 씨는 공(孔), 이름은 흘(紇)이고, 숙량(叔梁)은 자이다. 추인흘(郰人紇), 추숙흘(鄹叔紇)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양공 시절, 추읍(郰邑, 혹은 鄹邑)의 대부였기 때문이다. 그는 백하의 아들이고 시씨(施氏)를 아내로 얻어 딸 아홉을 낳았고, 이후에 안징재(顔徵在)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그 사이에서 공자를 낳았다.
계성왕
啓聖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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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추존왕 공자의 1대조 | |
재위 | (추존) |
전임 | 창성왕 |
후임 | 문선제 |
이름 | |
휘 | 공흘(孔紇) |
시호 | 계성왕(啓聖王) |
신상정보 | |
출생일 | 기원전 622년 |
출생지 | 불명 |
사망일 | 기원전 549년 |
사망지 | 불명 |
왕조 | 노나라 |
가문 | 공씨 |
부친 | 창성왕 |
모친 | 불명 |
배우자 | 노국태부인 안징재(鲁国太夫人) |
자녀 | 문선제, 맹피 |
사적
편집양공 10년(기원전 563년), 진나라의 주도로 제후연합군이 복양(偪陽)을 치는 전쟁에 참전했다. 이때 복양국은 성문을 열어 제후군을 성 안으로 유인한 후 현문(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형태의 문)을 내려 안에 가두려고 했는데, 숙량흘은 이 성문을 떠받쳐 더 닫히지 못하게 해, 성 안으로 들어간 군대가 탈출하게 했다.[1]
양공 17년(기원전 556년), 제나라가 노나라를 쳐 방읍에서 장흘(臧紇)을 포위하자, 장주(臧疇) · 장가(臧賈)와 함께 포위를 뚫고 장흘을 노나라 구원군이 있는 여송 땅으로 보내고, 다시 방읍으로 돌아갔다. 제나라 군대는 오래 있지 못하고 물러났다.[2]
추숭
편집공자의 아버지이므로, 공자가 역대 왕조에서 성인으로 추숭되면서 숙량흘 역시 추숭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