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뇨리아 광장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광장이다. 이곳은 피렌체 공화국의 기원과 역사의 핵심이며, 여전히 도시의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1] 우피치 미술관과 베키오 궁전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장 곳곳에는 피렌체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동상들이 서 있다. 이곳에서 처형당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기념하는 동판이 있다.
시뇨리아 광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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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zza della Signoria | |
기본 정보 | |
위치 | 이탈리아 피렌체 |
좌표 | 북위 47° 22′ 12″ 동경 8° 32′ 42″ / 북위 47.37000° 동경 8.54500° |
상태 | 개장 |
개장 | 1330년 |
용도 | 광장 |
건축 정보 | |
소유주 | 피렌체시 |
건물
편집인상적인 14세기 베키오궁은 첨탑으로된 탑으로 여전히 탁월하다. 광장은 또한 로자 데이 란치, 우피치 미술관, 상업재판소(1359년)(현재 농업국) 및 우구치오니궁(1550년, 파사드는 라파엘의 것으로 보이지만, 건설 30년 전에 사망)와 공유된다. 베키오궁 앞에는 아시쿠라치오니 제네랄리궁(1871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이 있다.
베키오궁
편집베키오궁 (‘고궁’)은 도시의 시청이다. 이 거대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새 궁전은 투스카니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청사 중 하나이다.[2]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있는 광장과 인접한 로자 데이 란치에 있는 동상 갤러리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사적 장소 중 하나이며, 문화 명소와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원래는 시뇨리아궁(Palazzo della Signoria)이라고 불렸고, 피렌체 공화국의 통치기관인 피렌체의 시뇨리아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도 했다. 긴 역사 동안 궁전의 다양한 쓰임새에 따라 포폴로궁(Palazzo del Popolo), 프리오리궁(Palazzo dei Priori)과 두칼레궁(Palazzo Ducale)과 같은 여러 다른 이름도 주어졌다. 건물은 메디치 공작의 거주지가 아르노강을 가로질러 피티궁으로 옮겨졌을 때 현재 이름을 얻었다.
로자 데이 란치
편집로자 데이 란치는 거리로 열린 넓은 아치, 너비 3개, 깊이 1개로 구성되어 있다. 아치는 코린트식 수도가 있는 클러스터화 된 기둥에 있다. 넓은 아치는 피렌체 사람들에게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미켈란젤로는 시뇨리아 광장 주변에서 계속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로자의 활기찬 건축은 베키오궁의 엄격한 건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메디치 사자상을 포함한 골동품 및 르네상스 예술의 야외 조각 갤러리이다.
상업재판소
편집상업재판소(Tribunale della Mercanzia)는 과거 상인 간 재판에서 변호사들이 재판했던 건물이다. 여기에는 타데오 가디, 안토니오 델 폴라이올로,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현관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우피치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우구치오니궁
편집우구치오니궁은 1550년부터 조반니 우구치오니를 위해 지어졌다. 그 디자인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바르톨로메오 암만나티 또는 라파엘로 다 몬텔루포에게 다양하게 봉헌되어 왔다.
아시쿠라치오니 제네랄리궁
편집아시쿠라치오니궁은 1871년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며, 도시 중심부에 있는 몇 안 되는 상업용 건물 중 하나이다. 이 궁전의 1층에는 역사적인 카페 리부아르(cafè Rivoire)가 있다.
조각상
편집이 광장에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위풍당당한 조각상이 있다.
-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베키오궁 입구; 미켈란젤로의 원본은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에 인접한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 코시모 1세의 승마기념비, 코시모 1세 데 메디치를 기리기 위해 잠볼로냐가 조각
- 넵투누스 분수, 바르톨로메오 아마나티 작
- 일 마르자코 사자상, 피렌체 백합의 사본이 있는, 원래 도나텔로가 만든 복제품
-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도나텔로 작품(복제품)
- 사비니 여인들의 강간, (로자 데이 란치), 잠볼라냐 (1583년)
-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로자 데이 란치), 첼리니 (1554년)
- 메디치 사자상, 판첼리와 바카 (1589년)
광장은 극장, 로마식 목욕탕, 직물 염색 작업장으로 둘러싸인 원래 로마 도시 플로렌티아의 중심 광장이었다. 나중에 로자와 거대한 5세기 대성당인 산 로몰로 교회가 있었다. 이것은 1980년대에 재포장되었을 때 광장 아래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보물에 의해 보여졌다. 신석기 시대 유적도 발견되었다. 광장은 1268년부터 기벨린 가문에 승리한 구엘프에 의해 철거되면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광장은 구멍으로 가득 찬 어수선한 상태로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1385년에 처음으로 포장이 되었다. 1497년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 광장에서 유명한 허영의 소각을 수행했다. 엄청난 책더미, 도박대, 고급 드레스와 시인의 작품을 불태웠다. 넵튠 분수 앞에는 둥근 대리석 명판 이 1498년 5월 23일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교수형에 처해 불태워진 정확한 지점을 표시하고 있다.[3]
갤러리
편집각주
편집- ↑ 《Florence: The City Layout》. Encyclopædia Britannica. 2007.
- ↑ “Style is referred to as Gothic”. 《미시간 주립 대학교》. 2007년 6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0월 25일에 확인함.
- ↑ 《Italy: Savonarola》. Encyclopædia Britannica. 2007.
외부 링크
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시뇨리아 광장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시뇨리아 광장 가상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