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장적
신라 장적(新羅帳籍)은 신라 때 서원경(西原京 : 현 청주시) 지방 4개 촌의 장적(帳籍)으로, 당시 촌락의 경제 상황과 국가의 세무 행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신라 민정 문서 또는 신라 촌락 문서, 정창원 문서(正倉院文書)라고도 부른다. 당시 신라의 율령 정치는 물론, 신라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귀중한 자료이다.[1]
발견
편집1933년 일본 도다이 사(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13매(枚)의 경질(經帙) 중 파손된 《화엄경론(華嚴經論)》의 책갑을 수리할 때 내부의 포심(布心)에 덧붙인 휴지 중에서 이 문서가 나왔다.[1]
내용
편집이 문서는 해서(楷書)로 씌었으며, 모두 62행(行)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 당현사해점촌(當縣沙害漸村)
- 당현살하지촌(當縣薩下知村)
- 촌명 미상의 촌
- 서원경 관할의 어느 촌
이상의 네 개 촌에 대한 촌의 둘레·연호수(煙戶數)·인구·전답(田畓)·마전(麻田)·백자(栢子 : 잣)·추자 (秋子 : 胡桃)·뽕나무 등의 나무 수와 소·말의 수효까지 기록되어 있어 촌락의 생태를 잘 알 수 있다. 이때 토지는 그 종류와 넓이를 기록하고, 사람은 인구·가호·노비의 수 등을 기록했다. 이 민정 문서는 3년간의 사망·이동 등 변동 내용에 따른 변동이 기록된 점으로 보아 3년 만에 한 번씩 작성된 듯하다.[1] 특히 사람은 남녀별로 구분하고, 16세에서 60세의 남자의 연령을 기준으로 나이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호(가구)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상상호(上上戶)에서 하하호(下下戶)까지 9등급으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작성 시기
편집이 문서의 작성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노무라 다다오는 경덕왕 14년(755년)으로 상정하고, 다른 학자는 815년설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학자에 따라 각각 연대를 달리 보고 있다.[1]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n.d.). “신라의 민정문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7년 10월 14일 확인함.
참고 문헌
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통일신라의 사회〉"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