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칸투아리엔시스
아우구스티누스 칸투아리엔시스(라틴어: Augustinus Cantuariensis, 영어: Augustine of Canterbury, 534년 11월13일 - 605년)는 기독교 사상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해 캔터베리의 주교로 서임되었다. 이후 와신상담하며 잉글랜드 각지에서 전도하였다.
관련 자료
편집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의 가문이나 청소년 시절 혹은 교육과정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그는 이탈리아의 로마(Roma) 태생으로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와 친분이 있었고,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던 베네딕토회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595년 그는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이듬해에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로부터 앵글로 색슨족을 복음화시키라는 사명을 받고 40명의 수도자들과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었다. 성 베다(Beda, 5월 25일)에 의하면 그는 이미 영국에 도착하기 전에 주교로 승품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를(Arles)의 대주교에 의해 주교 수품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597년 봄에 프랑크 왕국의 도움으로 영국 켄트(Kent) 왕국의 해안가 타네트(Thanet) 섬에 도착하였다. 그는 이미 영국에 진출해 있던 선교사들과 켄트의 왕인 성 에텔베르트(Ethelbert, 2월 26일)의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일랜드 교회와 로마 교회의 관습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선교활동에 장애가 많았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켄트의 수도인 캔터베리에 주교좌를 정하고 활동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와 활동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개종자들이 탄생했고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성 에텔베르트 왕과 신하들이 597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왕이 하사한 땅 위에 주교좌 성당을 세우고 도시 외곽에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 수도원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베네딕토회 수도원이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켈트(Celtic) 전례를 고수하려는 주교들이 로마 전례의 규율과 관습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는 여생을 켄트에서 보내면서 런던(London)과 로체스터(Rochester) 교구를 설정하고 주교를 임명하였다. 그는 캔터베리의 첫 번째 대주교이자 '영국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오스틴(Austin)으로도 불린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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