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포르투갈의 수상 (1889-1970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포르투갈어: António de Oliveira Salazar, 1889년 4월 28일 ~ 1970년 7월 27일)는 포르투갈의 정치인이다. 1932년부터 1968년까지 36년간 총리로 재임하며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António de Oliveira Salazar
포르투갈제101대 총리
임기 1932년 7월 5일~1968년 9월 25일
대통령 안토니우 오스카르 카르모나(1932 ~ 1951)
살라자르 본인 (1951)
크라베이루 로페스(1951 ~ 1958)
아메리코 토마즈(1958 ~ 1968)[1]
전임: 도밍구스 올리베이라(제100대)
후임: 마르셀루 카에타누(제102대)

신상정보
출생일 1889년 4월 28일
출생지 포르투갈 산바콩바
사망일 1970년 7월 27일
사망지 포르투갈 리스본
정당 국민연합
종교 로마 가톨릭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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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산타콩바당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비제우의 신학대학에서 성직자 교육을 받았으나, 코임브라 대학교에서 법학정치학을 전공했다. 그 후 코임브라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했다. 1926년 쿠데타 이후 경제 전문가로 1928년 재무장관에 임명되어 대공황 속에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수행했다. 이 공로로 1932년 오스카르 카르모나 대통령은 그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그 다음해 이스타두 노부(포르투갈어: Estado Novo) 체제를 도입하고 국민동맹을 조직하여 1당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그의 정권은 총리에게 권한을 집중시키고 경제개발에 집중한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1936년 스페인 내전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지원했으나, 스페인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중립을 지키면서 연합국을 원조하였다. 하지만 몰래 나치를 원조하기도 하였으며 유대인 수용소를 짓는 등 나치의 방식을 모방하였다. 전쟁 후에는 서방측에 가담하여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참여하며 국제적 지위를 보장받았다. 1951년 카르모나 대통령이 사망하여 대통령이 바뀌었으나, 그는 계속 총리로 재임할 수 있었다.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 식민지들이 대부분 독립한 것과 달리 식민지 정책을 계속 유지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1968년 8월, 휴식중 해먹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쳐 의식 불능 상태가 되어 그 해 9월 25일에 부득이 해임되었다. 해임된 후 의식을 되찾았으나, 이미 후임 총리가 선출되었기 때문에 복귀하지 못했다. 이후 그의 측근들은 그가 자신이 해임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논란이 일어날 수 있어 그를 남부 휴양지로 보내 가짜 문서에 서명하게 하여 그가 아직 총리직을 수행하게끔 믿게 만들었다. 1970년 81세의 나이에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으며, 민주화는 1974년에야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루어졌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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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메리쿠 토마스는 살라자르가 죽은 이후에도 1974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했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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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도밍구스 올리베이라
제101대 포르투갈의 총리
1932년 7월 5일 ~ 1968년 9월 25일
후임
마르셀루 카에타누
전임
안토니우 오스카르 카르모나
포르투갈의 대통령 권한대행
1951년 4월 18일 ~ 1951년 7월 21일
후임
크라베이루 로페스
전임
안토니우 오스카르 카르모나
포르투갈의 국가 원수
1951년 4월 18일 ~ 1951년 7월 21일
후임
크라베이루 로페스
전임
도밍구스 올리베이라
포르투갈의 정부수반
1932년 7월 5일 ~ 1968년 9월 25일
후임
마르셀루 카에타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