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드 뇌빌
프랑스 화가
알퐁스마리아돌프 드 뇌빌(프랑스어: Alphonse-Marie-Adolphe de Neuville, 1835년 5월 31일~1885년 5월 18일)은 프랑스의 화가이며 외젠 들라크루아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는 보불 전쟁, 크림 전쟁, 줄루 전쟁 등 주로 극적이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시 미술관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알퐁스 드 뇌빌 Alphonse de Neuvill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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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드 뇌빌의 우드베리타이프, 1880년경 | |
신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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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Alphonse-Marie-Adolphe de Neuville |
출생 | 1835년 5월 31일 프랑스 생토메르 |
사망 | 1885년 5월 18일(49세) 프랑스 파리 |
직업 | 화가 |
국적 | 프랑스 |
성별 | 남성 |
스승 | 외젠 들라크루아 |
분야 | 역사화 |
사조 | 아카데믹 미술 |
배우자 | Mimi Maréchal |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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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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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
묘비 | |
묘소 | 몽마르트르 묘지 |
어린 시절
편집파드칼레주 생토메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뇌빌은 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56년 로리앙에 있는 해군 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의 예술적 본능이 시작되었다.[1]
젊은 알퐁스 드 뇌빌은 저명한 여러 화가에게 좌절을 당했지만,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피코 밑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진 않았다. 자신의 첫 작품인 〈제르베 포대의 제5기병대대〉 (말라코프)를 제작했을 당시 뇌빌은 이미 혼자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1860년에 뇌빌은 프로방스 거리에 있는 예술가 클럽을 위해 〈가리발디가 나폴리를 점령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1861년에 그는 〈Mamelon Vert의 참호 속의 경비병〉을 파리 살롱에 제출했다.[2]
작품
편집-
〈마지막 탄창〉(Les Dernières Cartouches), 18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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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éfense de la porte de Longboyau, 21 octobre 1870, 18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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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vouac après le combat du Bourget, 21 décembre 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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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aille de Champigny, 18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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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 at the Railway Embankment, 18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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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에서〉, 18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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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의 나팔수〉, 18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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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공격〉, 18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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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자의 마지막 잠〉, 18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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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18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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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프리파트 공동묘지〉, 18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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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avant ! ou Le combat de Chenebier, 18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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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 1884년
각주
편집- ↑ Chisholm 1911.
- ↑ 본 문서에는 현재 퍼블릭 도메인에 속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11판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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