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달라 부카람
압달라 부카람(스페인어: Abdalá Bucaram, 1952년 2월 20일 과야킬 ~ )은 에콰도르의 전직 정치인이자 육상 선수였다. 1996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무능력과 부패로 파면되었으며 현재 파나마에 거주 중이다. 본명은 압달라 하이메 부카람 오르티스(Abdalá Jaime Bucaram Ortíz)이다.
압달라 부카람 Abdalá Bucara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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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압달라 하이메 부카람 오르티스 |
로마자 표기 | Abdalá Jaime Bucaram Ortíz |
출생 | 1952년 2월 20일 과야킬 |
성별 | 남성 |
국적 | 에콰도르 |
경력 | 1984년 제2과야킬 시장, 1996년 에콰도르 대통령 |
직업 | 정치인, 육상 선수 |
소속 | 롤도시스트당 |
그의 이름인 압달라(Abdalá)는 아랍어 이름인 압둘라(Abdullah)에서 유래한다. 그는 레바논 이민자의 아들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육상 선수로 활약했다.[1] 1981년 대통령이자 자신의 매형인 하이메 롤도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이름을 딴 롤도시스트당을 창당, 1984년 제2과야킬 시장이 됨으로써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화젯거리로 자리잡았는데 일례로 그는 부통령인 로살리아 아르테아가의 치마를 들추기도 했다.[2] 또한 그는 로드리고 보르하 前대통령을 "당나귀"라고 놀리기도 했다.[3]
199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로살리아 아르테아가(부통령)와 함께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중에도 가수로도 활동하였으며,[4] 개혁 정책의 성공으로 높은 지지를 얻기도 했으나, 자신의 개혁안의 한계가 드러나고 만다. 그 결과 도시가스를 비롯한 시민들의 기본생활요금이 급격히 올라가는 일이 터졌고[5] 부패에 연루되어, 의회의 탄핵이 들어갔다.
이에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고, 끝내 반정부 시위로 번지게 된다.[6] 결국 그는 사퇴하게 되고, 파비안 알라르콘이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파비안 알라르콘은 동년 2월 9일 추대된 로살리아 아르테아가를 이틀만에 축출하고 임시 대통령직에 올랐다. 하지만 알라르콘의 두 번째 임기 때, 부카람은 '아르테아가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야 했는데'라는 식으로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7]
그 후 파나마로 망명했다가 귀국했고, 그 후에도 부패 혐의가 계속 더해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은 여전히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역대 선거 결과
편집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1차 득표율 | 1차 득표수 | 2차 득표율 | 2차 득표수 | 결과 | 당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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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선거 | 에콰도르의 대통령 | 85대 | 롤도시스트당 | 26.28% | 1,001,071표 | 54.47% | 2,285,397표 | 1위 |
각주
편집- ↑ “에콰도르 집권자 압달라 부카람”. 동아일보. 1996년 10월 25일.
- ↑ “에콰도르 집권자 압달라 부카람”. 동아일보. 1996년 10월 25일.
- ↑ “에콰도르 집권자 압달라 부카람”. 동아일보. 1996년 10월 25일.
- ↑ “에콰도르 집권자 압달라 부카람”. 동아일보. 1996년 10월 25일.
- ↑ “軍部 지원업고 난국 해결사로”. 경향신문. 1997년 2월 11일.
- ↑ “에콰도르 대통령 사임요구 시위”. 동아일보. 1997년 2월 7일.
- ↑ “에콰도르 개헌 합의 대통령직 승계절차 포함”. 경향신문. 1997년 2월 17일.
외부 링크
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압달라 부카람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