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집
엄집(嚴緝, 1635년 ∼ 1710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경지(敬止), 호는 만회(晩悔)이다. 형조판서(刑曹判書), 공조판서(工曹判書)와 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생애
편집1673년(현종 14) 춘당대시(春塘臺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1]
1678년(숙종 4) 정언(正言)이 되고, 부교리(副校理)·사간·집의(執義)·승지 등 주로 삼사(三司) 청화직(淸華職)에 출입하였다.
1689년(숙종 15)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내고, 1693년 승지(承旨)로서 붕당(朋黨)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이어 대사간(大司諫)을 지내고, 1696년 개성부 유수에 승진되었다가 1698년 도승지로 전임되었다.
1701년(숙종 27)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올라 장희빈(張禧嬪)을 논죄하였다.[2] 다음해 의정부좌참찬과 예조판서를 역임한 뒤 1706년 우참찬, 1707년 대사헌(大司憲)이 되었다.[3]
엄집은 청렴하고 근신하여 스스로 신칙(申飭)하였다. 만년(晩年)에는 병이 들어 종사(從仕)하지 못하였는데, 좌의정 서종태(徐宗泰)가 그 실상을 아뢰자 왕이 적당한 약물(藥物)을 주도록 하였다. 결국 1710년 졸(卒)하니, 나이 76세였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