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예 (고려)
고려 호족
왕예(王乂)는 신라 말 고려 초 명주의 호족이다. 881년 (신라 헌강왕 7년) 태어났다. 고려 태조의 제14비인 대명주원부인의 아버지이며, 내사령(內史令)을 지냈다.[1]
왕예
王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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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신 | |
재위 | 미상 |
후임 |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 |
이름 | |
휘 | 김예(金乂) |
이칭 | 미상 |
별호 | 미상 |
시호 | 미상 |
묘호 | 미상 |
신상정보 | |
출생일 | 881년 |
출생지 | 강원도 강릉(江原道 江陵) |
사망일 | 몰년 미상(沒年 未詳) |
사망지 | 강원도 강릉(江原道 江陵) |
왕조 | 신라(新羅) |
가문 | 강릉(江陵) |
부친 | 김선희(金善希) |
모친 | 미상 |
배우자 | 미상 |
자녀 |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 |
종교 | 불교(佛敎) |
생애
편집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6세손이며, 김선희(金善希)의 아들이다. 김주원의 후손들은 강릉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에 강력한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동정(東靖)·영길(英吉)·선희(善希)·예(乂)로 이어지는 계열은 강릉의 토착세력으로 위세를 떨쳤다.[2]
왕예는 왕건에게 귀부(歸附)한 지명주군주사(知溟州軍州事) 왕순식(王順式)의 휘하에서 후삼국 통일전쟁을 수행하면서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왕씨 성을 하사받았고, 왕건의 공신이 되었으며, 내사령을 역임하였다.[2] 왕예의 후손들은 중앙 귀족으로 진출하는 등 가문이 크게 번성하였다.[3]
가계
편집각주
편집-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사 홈페이지 大溟州院夫人王氏, 溟州人, 內史令 乂之女. 《고려사》권88〈열전〉권1
- ↑ 가 나 최호. “왕예”. 《디지털강릉문화대전》. 2017년 12월 25일에 확인함.
- ↑ 신호철 (2010년 8월). “신라말 고려초의 강릉호족 왕순식”. 《충북사학》 25권: 27쪽. 2017년 12월 26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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