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고려)
유방(庾方, ?~1038년 7월 24일)은 고려의 관료, 재상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고려의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의 손자이다. 벼슬은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유방
庾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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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현개국남 | |
고려의 문하시중 | |
재임 | 1027년~1038년 |
이름 | |
휘 | 방(方)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1038년 7월 24일 |
사망지 | 미상 |
가문 | 평산 유씨 |
배우자 | 미상 |
자녀 | 유달(庾達) |
종교 | 불교 |
묘소 | 미상 |
생애
편집993년(성종 12) 거란의 소손녕이 침입하여오자 화친사로 감찰사헌 이몽전(李蒙戩)을 보내었는데 돌아와서 아무런 회답이 없자 드디어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게 되었다. 이 때 중랑장(中郞將) 대도수(大道秀)와 함께 낭장(郞將)으로서 소손녕과 싸워서 이기자 소손녕은 감히 다시 진군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어 항복하기만을 재촉하였다.[1]
1009년(목종 12) 왕의 병환이 위중하므로 친종장군으로서 중랑장 하공진(河拱辰)·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근전문(近殿門)을 수직(守直)하였다.[2]
1011년(현종 2) 5월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상장군(上將軍)이 되었고,[3] 10월에는 참지정사 서경유수 겸 서북면행영도병마사(叅知政事 西京留守 兼 西北面行營都兵馬使)로 임명되었다.[4]
1016년 11월 형부상서 참지정사(刑部尙書 叅知政事)로 임명되었다.[5]
1019년 천승현개국남(千乘縣開國男)에 봉하여졌다.[6]
1020년(현종 11) 예부상서(禮部尙書) 양진(梁稹)과 형부시랑(刑部侍郞) 한거화(韓去華)를 거란(契丹)에 보내 왕자를 연경군(延慶君)으로 책봉한 것을 알리려하자 재신(宰臣)으로서 그만두자고 간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7]
1021년 검교태보(檢校太保)를 역임하고,[8] 1022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었다.[9]
1023년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를 거쳐 태자태보(太子太保)로 임명되었다.[10]
1027년(현종 18)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재직 중 표문(表文)을 올려 사직을 간청하니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특진(特進)하였다.[11]
1038년(정종 4) 음력 6월 20일(양력 7월 24일) 시중(侍中) 유방(庾方)이 졸(卒)하였다.[12]
가계
편집유방이 등장한 작품
편집각주
편집- ↑ 《고려사》 권94 열전 권제7
- ↑ 《고려사》 세가 권제3 목종(穆宗) 12년 1월
- ↑ 《고려사》 세가 권제4 현종(顯宗) 2년 5월
- ↑ 《고려사》 세가 권제4 현종(顯宗) 2년 10월
- ↑ 《고려사》 세가 권제4 현종(顯宗) 7년 11월
- ↑ 《고려사》 세가 권제4 현종(顯宗) 10년 12월
- ↑ 《고려사》 권4 세가 권제4 현종(顯宗) 11년 4월
- ↑ 《고려사》 세가 권제4 현종(顯宗) 12년 8월
- ↑ 《고려사》 세가 권제4 현종(顯宗) 13년 6월
- ↑ 《고려사》 세가 권제5 현종(顯宗) 14년 12월
- ↑ 《고려사》 세가 권제5 현종(顯宗) 18년 1월
- ↑ 《고려사》 세가 권제6 정종(靖宗) 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