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영
윤오영(尹五榮, 1907년 ~ 1976년 8월 22일)은 대한민국의 수필가이다.
윤오영 尹五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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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 |
출생 | 1907년 대한제국 한성부 |
사망 | 1976년 8월 22일 0시 15분[1] 대한민국 서울 성북구 동선동2가 135 |
국적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언어 | 한국어 |
모교 | 양정고보 |
필명 | 치옹, 동매실주인 |
활동기간 | 1959년 ~ 1976년 |
장르 | 수필 |
부모 | 윤용구(부) |
주요 작품 | |
<고독의 반추>, <곶감과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 | |
영향 | |
영향 받은 인물 | 연암 박지원 |
영향 준 인물 | 피천득 |
수필집 《고독의 반추》(1974), 《방망이 깎던 노인》(1974) 등과 수필문학론을 정리한 《수필문학입문》(1975) 등을 발간했다.[2]
국문학자 정민은 윤오영의 문체를 일러 간결하고, 함축과 여운이 유장하다고 평했다. 또한 그의 수필을 한국 수필이 거둔 가장 빛저운 수확의 하나로 극찬했다.[3]
생애
편집어렸을 때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여 후에 <연암의 문장>, <노계 가사의 재평가> 등 고전 문장가들에 대한 연구의 성과를 남겼다.
양정고보 재학 시절에는 동아일보 학생문예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경성시내 문학학생회 회장을 맡았다고 전한다. 1927년 5월에 열린 '전조선중등학생현상웅변대회'에 '자기혁신'을 주제로 참가하기도 했다.[4]
양정고보 졸업 후 보성고보에서 20년여간 국어교사로 교편생활을 하다가 5.16 이후 교원 자격 시비로 인한 무자격 교사 해임 조치[5]로 인해 교직을 떠나 학원 강사로 생계를 이었다. 1959년 《현대문학》지(誌)에 <측상락>(厠上樂)을 발표한 것이 작품활동의 시작이나, 1972년 창간한 《수필문학》지(誌)를 통해 가장 활발히 문단활동을 펼쳤다.
관계
편집양정고보 재학 때에 3년 후배로 만난 금아 피천득은 고보 졸업 후에도 보성고 교무실을 찾아 만나는 등 지속적으로 교류했다고 전한다. 윤오영의 수필 <비원(秘苑)의 가을>에 등장하는 '금아'가 피천득이며, 반대로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에 나오는 '치옹'이 윤오영이다.[6]
작품활동
편집53세가 되던 1959년에 <측상락>(厠上樂)을 《현대문학》지(誌)에 발표하며 등단하였으나, 1972년 창간된 《수필문학》지(誌)에 <수필문학의 첫걸음>, <수필문학론> 등을 연재하며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쳤다. 1974년 수필집 《고독의 반추》[7]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8] 같은 해에 '수필가협회'에서 발간한 《한국수필 75인집》에 <방망이 깎던 노인>이 수록되었다.[8]
1975년 《수필문학》지(誌)에 연재한 내용을 엮어 《수필문학입문》을 펴내어 수필문학 이론의 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요 작품
편집〈방망이 깎던 노인〉, 〈달밤〉, 〈양잠설〉, 〈마고자〉, 〈백사장의 하루〉, 〈부끄러움〉
저서
편집각주
편집- ↑ “수필가 윤오영씨”. 동아일보. 1976년 8월 24일.
- ↑ 권영민 (2004).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대학교출판부. 630쪽. ISBN 10-8952104617.
- ↑ 윤오영 (2000년 5월 12일). 정민, 편집. 《곶감과 수필》. 태학사. 13~15쪽. ISBN 89-7626-535-1.
- ↑ “연사연제결정(演士演題決定)”. 동아일보. 1927년 5월 12일.
- ↑ “보성고, 맹휴(盟休) 돌입”. 경향신문. 1963년 3월 12일.
- ↑ “강우방의 책읽기 - 윤오영 수필집 '고독의 반추' 삶 관조 깊고 은은한 향기”. 한겨레신문. 1996년 10월 15일.
- ↑ 윤오영 (1974) [1974]. 《고독의 반추》. 관동출판사.
- ↑ 가 나 “한국수필 75인집 - 수필가협발간”. 매일경제신문. 1974년 10월 26일.
- ↑ 윤오영 (1975) [1975]. 《수필문학입문》. 관동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