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1874년)
생애
편집황해도 곡산에서 출생했다. 같은 천도교 신자로 3·1 운동에 함께 참가한 노헌용과는 동향이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참가하였다. 그는 이종일과 손병희를 통해 거사에 가담한 뒤 기미독립선언서를 운반하여 황해도 여러 지역에 배부하고 지역 만세운동을 일으키는 역할을 맡았다. 천도교에서는 인종익(충청도와 전라도), 안상덕 (강원도, 함경도), 김홍렬(평안도)이 그와 함께 각 지역의 독립선언서 배포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고향인 곡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가 3월 4일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사후
편집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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