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李葂) 선조 10년(1577) 정축년 ∼ 선조 30년(1597) 조선중기 문신.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

본관은 덕수(德水). 조부는 덕연부원군 이정(李貞)이며,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3남이다. 영리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에 대한 보복으로 아산을 습격한 일본군에 항쟁하다 향년 21세에 전사하였다.

葂 未娶卒 一五七七年宣祖丁丑生有膽略善騎射 一五九七年宣祖丁酉十月 遇委于牙山連 殺賊中伏匁而死 之正宗朝特 贈通政大夫吏曹叅議▶墓牙山白岩里有表石[1]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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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부인 방 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영리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에 대한 보복으로 아산현에 습격한 일본군에 항쟁하다 전사하였다. 부친 이순신난중일기에서 이면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애통했다.

저녁에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온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거칠게 겉면을 뜯고 열이 쓴 편지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자가 쓰여 있었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리하기가 보통을 넘어섰기에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서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을 수 밖에 없구나!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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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의 묘는 현충사에 있다.

이면이 등장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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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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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헌회, 《고산집》 권15, 증 이조참의 이 군 묘표
  1. 덕수이씨대종회. 《德水李氏世譜 덕수이씨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