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 (1927년)
이종학(1927년 1월 16일 ~ 2002년 11월 25일)은 경기도 화성군에서 태어났으며, 서지학자, 사료 수집가, 근현대사 연구가, 충무공 연구가, 독도 연구가 등으로 불리었다. 호는 사운(史芸)이다.
이종학 李鍾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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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7년 1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
사망 | 2002년 11월 25일 | (75세)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초등학교 졸업 1969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
경력 | 사운연구소 소장 독도박물관 관장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소장 외 |
직업 | 서지학자 |
상훈 | 200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외 |
생애
편집일곱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끝으로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농사 짓다 해방 뒤 서울에서 고학하던 그는 전쟁으로 다시 학업을 접어야했다. 책을 마음껏 보고싶어 고서점을 시작했다.[1]
고문헌을 탐독했던 이종학은 충무공 사료연구에 몰두했다.
독도영유권과 구한말 한국강제병합 문제 등으로 관심영역을 넓혀 희귀사진과 문헌 등을 언론에 잇따라 공개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특히 60~70년대 초창기 독도관련 자료들은 대부분 그가 수집해 밝힌 것들이다.
90년대 들어 그는 사운연구소 설립과 독도박물관 건립 등을 통해 수집자료의 정리·기증에 주력했다.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전 30권), <1910년 한국강점자료집>(전12권), <일본의 독도정책자료집>(전10권) 등을 발간해 국내 연구기반 확보에 기여했다.
1997년엔 기증자료 500여 점을 바탕으로 독도박물관을 개관했으며, 2000년까지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냈다.
2001년 3월엔 북한에서 `일제의 조선강점 비법성에 대한 공동자료전시회'와 토론회를 열어 일본규탄 공동성명을 남북학계 최초로 발표한 주역이 됐다.
연구 활동
편집- 76년 명량대첩 장계를 언론에 공개
- 거북선 실체를 규명한 <조선수군주력선도>와 탁월한 육상전투 지휘관으로서 이순신의 면모를 조명한 <반곡집>의 발굴
- 충무공이 왜군으로부터 항복받았던 사적인 통영 수항루의 옛 사진 발굴과 위치 고증
- <난중일기>와 충무공 한시의 숱한 번역 오류를 집어내었다.
- 1592년 독도가 조선땅임을 일본 스스로 밝힌 <팔도총도>와 1883년 일본 해군성 수로국 발행문서인 <환영수로지> 등을 찾아냈다.
- 독도가 조선 영해이고 동해가 '조선해'임을 표기한 일본의 고지도 20여 점을 찾아내고 2000년 <한일어업관계자료집>도 발간해 영유권 주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 일제가 수원성으로 왜곡한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제 이름을 찾아주었다.
저술
편집- "1910년 한국강점 자료집" (2000년, 사운연구소)
- "세계문화유산 화성 제 이름 찾기까지" (1999년, 사운연구소)
- "일본의 독도정책 자료집" (2000년, 사운연구소)
- "한일어업관계조사자료" (2000년, 사운연구소)
- "일한병합시말" (2001년, 사운연구소)
약력
편집상훈
편집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각주
편집- ↑ 노형석 (2001년 7월 8일). ““역사의 텃밭 김매는게 내 직업””.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