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현군
익현군 이련(翼峴君 李璉, 1431년 ~ 1463년 5월 30일(음력 5월 4일))은 조선 전기의 왕자로, 조선 제4대 왕 세종의 14남이자 서7남이다. 어머니는 신빈 김씨이다. 시호는 충성(忠成)이며 자는 광지(光之)이다. 다른 이름은 이관(李璭)이다.
익현군
翼峴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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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의 왕자 | |
이름 | |
휘 | 이관(李璭), 이련(李璉) |
시호 | 충성(忠成)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31년 |
사망일 | 1463년 5월 30일(양력) (향년 33세) |
부친 | 세종 |
모친 | 신빈 김씨 |
배우자 | 김제군부인 평양 조씨 |
자녀 | 1남 1녀 |
생애
편집세종의 14남으로, 생모는 신빈 김씨(愼嬪 金氏)이며, 아내는 김제군부인 평양 조씨(金堤郡夫人 平壤 趙氏)이다. 아들 괴산군 강회공 지(槐山君 康懷公 漬)과 딸 이씨 등 1남 1녀를 낳았다. 성격이 윗사람의 뜻을 잘 맞추어 수양대군(首陽大君)의 계유정난을 도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책정되었다.
1456년 난신에 연좌된 부녀자들을 공신에게 종으로 나눠줄 때 이담(李湛)의 아내 소사(召史), 박기년(朴耆年)의 아내 무작지(無作只), 이오(李午)의 딸 평동(平同), 이유기(李裕基)의 누이 효전(孝全) 등을 받았다.
1458년에는 병석에 누웠는데 세조가 내의(內醫) 김길호(金吉浩)를 남양(南陽)에 보내 그를 간호하게 했다.
형 계양군 증(桂陽君 璔)과 더불어 간사한 사람들과 어울려 술꾼이 되어 밤에는 여염집에서 창기(娼妓)를 불러 술을 자주 마시다가 술병을 얻어 죽었다.[1] 죽기 전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한다. 이때 세조는 '이것은 모두 계양군(桂陽君)의 허물이다. 의창군(義昌君)이 술로써 죽었는데, 익현군(翼峴君)도 또한 술로써 죽으니 매우 슬프다.' 하였다.
사후
편집바로 시호를 충성(忠成)이라 하고, 조회를 2일간 철조하였다 한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 산201-7번지 초입(初入:어귀)에 소재하고 있다.
가족관계
편집출처
편집-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익현군”. 2016년 3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월 30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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