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재 (1472년)
임희재(任熙載, 1472년 ~ 1504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 서예가이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여(敬輿), 호는 물암(勿菴)이다.
아버지 임사홍은 훈구파 계열이었으나 그는 김종직의 문하생이었다. 과거 급제 후 승문원정자를 지냈으며 갑자사화 때 김일손, 이목의 무리로 지목되어 유배되었으며, 연산군의 폭정을 비난하는 시를 병풍으로 만들었다가 살해되었다.
생애
편집1472년(성종 3)에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임원준이고, 아버지는 임사홍이고 어머니는 효령대군의 손녀이자 보성군의 딸인 전주 이씨이다. 임사홍의 넷째 아들로 그의 형 임광재, 동생 임숭재는 각각 예종과 성종의 딸과 결혼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다. 임희재 본인도 영응대군 이염과 대방부부인 송씨의 외손녀 구순복(具順福)[1]과 혼인했는데 송씨가 그를 남달리 총애하여 많은 노비와 땅을 주었다.[2]
그의 외사촌 형 주계군 이심원 역시 김종직의 문하생이었고, 비슷한 연배의 진외당숙[3]인 남곤 역시 김종직의 문인이었다.
성리학자 김종직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486년(성종 17)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다. 그 뒤 1498년(연산군 4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승문원 정자 등을 지냈다. 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선발되었다.
1498년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과 관련하여 김일손, 이목의 무리로 지목되었다. 그 뒤 임희재의 집안 병풍에 그가 직접 쓴 시에 왕을 비방하는 내용이 있다는 죄로 종성(鍾城)으로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그러나 1504년(연산군 10년)에 갑자사화 때 왕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참수되었다. 처인 구순복은 올케인 연산군의 딸 휘신공주 뜻으로 방면되었다.[1]
사후
편집임희재는 성품이 곧고 권력을 멀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종 반정 이후 아버지 임사홍이 사형당했으나 그는 갑자사화, 무오사화 때 화를 입었다 하여 연좌되지는 않았다.
가족관계
편집관련 작품
편집드라마
편집각주
편집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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