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황룡 전적
장성 황룡 전적(長城 黃龍 戰蹟)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하는 계기가 된 황룡전투의 전적지이다. 1998년 6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06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의 사적 | |
종목 | 사적 (구)제406호 (1998년 6월 10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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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20,338m2 |
시대 | 조선시대 |
위치 | |
주소 |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내황길 50-8, 외(17필지) (신호리) |
좌표 | 북위 35° 17′ 18″ 동경 126° 44′ 57″ / 북위 35.28833° 동경 126.74917°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개요
편집이 곳 장성 황룡전적은 고종 31년(1894년) 반봉건·반외세의 정신으로 일어선 동학농민군이 최초로 정부에서 파견된 경군에 승리한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이다.[1]
황룡전투는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고창·영광·함평을 차례로 점령한 후, 전라도의 수도이자 이씨왕조의 태생지인 전주를 점령하기 위하여 이학승이 이끄는 경군과 일대접전을 벌였던 전투이다. 이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정부의 정예부대를 격파한 의미있는 전투로, 동학군에게는 사기와 자신감을 경군에게는 낭패와 당혹감을 주어 경군의 행동반경을 위축시킨 계기가 되었다. 황룡전투에서 승리한 동학군은 양총 1백여정 등 많은 무기를 빼앗아 곧바로 전주성을 점령하게 되었으며 몇차례 공방전을 벌인 후 동학군의 요구를 수용했던 전주화약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황룡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신식무기를 갖춘 경군을 무찌를 수 있었던 무기로 장태[2]가 처음 등장하였는데, 대나무를 쪼개 원형으로 길게 만들어 짚을 넣어 굴리면서 총알을 피했던 무기이다.[1]
현재 이곳에는 동학사상을 일깨우고 후세들의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1997년에 동학혁명 승전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 1기, 파고라 2동, 잔디광장, 경군대장 이학승순의비 등이 세워져 있다. 장성 황룡전적은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1998년 4월 18일 국가지정 사정 제406호로 지정되었다.[1]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참고 자료
편집- 장성 황룡 전적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