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신문(帝國新聞) 또는 뎨국신문1898년 8월에 창간된 신문으로, 순 국문판으로 발행하였다. 이승만, 유영석, 이종일 3인이 주동이 되어 창간하였으나 이승만은 한달도 못되어 만민공동회로 인해 감옥에 가게되고, 유영석은 개인 사정상 퇴사하여 한동안 이종일 단독으로 사장과 기자 역할을 하며 운영하였다.[1][2]

1899년 초, 사무실에서 불이나 인쇄 기계가 고장나고 가옥이 전부 불타버린 화재 사건을 당하게 되었다.[1] 유지인 김효신의 도움으로 세를 내어 방을 구하고 활판을 빌려서 다시 복간되었다.[1][2] 당시 대한제국 정부의 잘못을 비판함으로 당국자에게 여러가지 탄압을 받았으나 신문 구독자가 적고 경비가 누적되어 재무적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신문 발간을 지속하였다.[1]

가장 중요하고 인기가 있던 1면 논설 부분을 맡을 국문에 능하고 글을 쓸 여력과 학식을 갖춘 인물을 찾기가 어려워 한동안 옥중에 있는 이승만에게 부탁하여 1901년 1월부터 1903년 4월 17일까지 약 27개월간 비밀리에 그의 글을 익명으로 게재하였다.[1] 그러나 외세와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압력이 들어오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승만을 주필에서 해임시켰다.[1] 이후에는 이종일이 직접 논설을 담당하였다가 1907년 6월 7일, 새로운 주필인 정운복으로 교체되었다.[1]

독자층은 대개 중류 이하의 대중 및 부녀자였으며, 1910년 일본에게 강제 폐간될 때까지 자주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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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종일 (1907년 6월 7일). “본사의 행복과 본 기자의 해임”. 뎨국신문. 
  2. 뎨국신문 (1907년 6월 14일). “남대문 밖 원경민씨가 보낸 글” 통권 (제24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