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님 프라슈스키
프라하의 제롬(체코어: Jeroným Pražský, 1379년 ~ 1416년 5월 30일) 또는 예로님 프라즈스끼는 체코의 철학자, 신학자, 종교개혁가, 그리고 교수였다. 제롬은 얀 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후스를 따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후스파였다. 서방교회의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했다. 그는 종종 그의 이름의 라틴어 형태인 히에로니무스로 불린다.[1]
생애
편집제롬은 1379년 보헤미아 왕국(지금은 체코 공화국)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의 카렐 대학교을 졸업하고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존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깊게 알게 되었다. 그는 철학자, 신학자, 종교개혁가로서 자신의 삶을 헌신하였고, 잘못된 교회의 부패와 교리를 개혁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속적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나오는 삶을 살았다.[2] 1412년 고향에서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저항에 참여했고 1415년 봄에는 얀 후스를 돕기 위한 종교재판에서 그를 위해 증언하였다. 그러다가 그 역시 투옥되었고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오랜 감옥생활과 긴 심문으로 한때 후스의 주장을 포기하기도 하였지만 다시 후스가 진리의 증인임을 선언하였고 결국 1416년 5월 30일 콘스탄츠에서 화형을 당했다.[3]
프라하 제로님의 집
편집체코 프라하의 제즈니츠까 거리에 우 모드레호 르바 라는 저택이 있는데 이 곳에 제로님의 기념현판이 붙어 있다. 제로님 순교 500주년인 1916년에 콘스탄츠연합 프라하 지부에서 만든 기념현판을 이 건물에 만들어 붙였는데 이 현판에는 콘스탄츠에서 화염에 싸인 장작더미 가운데 대학 가운을 입고 가슴에는 성경이 그려진 제로님을 묘사하고 있다. 이 현판에는 "제로님 선생 1416년 5월 30일 타오르는 말뚝의 화염속으로 사라지다."라고 써있고 동판의 가장자리에는
“ | 후스에게는 믿음의 동역자, 진리의 수호자, 예수의 증인 | ” |
이라고 새겨져 있다.
각주
편집- ↑ 〈Council of Constance〉. 《가톨릭 백과사전》 4. 뉴욕: 로버트 애플턴 사. 1908.
- ↑ Bernard, Paul P. "Jerome of Prague, Austria and the Hussites".
- ↑ 이지 오떼르 《걸어서 가보는 프라하 종교개혁 이야기》(한국장로교출판사, P.126)
외부 링크
편집- Foxe's "Chapter VIII: Persecution of Jerome of Prague", The Book of Marty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