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울산성 전투
제1차 울산성 전투(第一次蔚山城戰鬪)는 1598년 1월 29일 ~ 2월 9일에 조명연합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로 흔히 한국에서 알려진 울산성 전투는 제1차 전투이다. 이후 제2차 공세도 있었지만 당시 조선군의 '선거이'장군이 전사한다.
제1차 울산성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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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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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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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조선 |
주둔군 | ||||||
병력 | |||||||
조선 1만 2천 500명 명나라 3만 6천명 총병력 5만 7천 500명 |
울산성 주둔군 1만명 구원군 1만 3천명(나베시마 나오시게의 병력) 6만 ~ 8만명(구원군 총합) | ||||||
피해 규모 | |||||||
1621 |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음 |
울산성 공격
편집조선의 도원수 권율과 명나라 부총병 양호(楊鎬)는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울산의 가토 기요마사 중 누구를 먼저 쳐야 할 지 의논했는데 울산이 일본군의 본거지라는 이유로 1598년 1월 29일(1597년 음력 12월 23일) 가토 기요마사의 1만 5천명의 군사가 지키는 울산왜성을 공격했다. 이때 조명연합군은 조선군 1만 1천 5백명, 명군 3만 6천명으로 명나라 제독 마귀도 합세해 울산성을 공격했다.
공방전
편집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이 조명연합군을 격퇴한 수성전이다. 조명연합군은 새벽시간 때에 압도적인 숫자로 사면에서 성을 공격했지만 성을 지키는 일본군에게 대패하고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을 했다. 25일 명나라군은 조선군의 도원수 권율을 불러 오늘은 휴식하지만 내일은 권율 그대가 군대를 이끌고 다시 한번 치라고 명령한다. 권율은 조선군 단독으로 성을 공격하지만 일본군이 또 한번 조총으로 조선군을 격파하였고, 권율은 대패하여 퇴각한다. 이후에도 계속하여 조명연합군은 공격하지만 모두 대패하였다.
계속되는 패배로 인해 조명연합군은 공격을 중단하고 대치하였다. 일본군은 군량이 충분하지 않았던데다 겨울이었기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쓰러지는 병사들이 발생하였다. 가토 기요마사는 할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겠다며 계속 투쟁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명연합군 입장에서도 일본 지원군 파견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결국 일본군이 도착하고 조명연합군은 격파당한다.